[월요 논단]시가 있는 제주

[월요 논단]시가 있는 제주
  • 입력 : 2012. 11.12(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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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무료한 시간 동안 기다리는 사람의 심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그 무엇이 있음을 말이다. 바로 승차하는 곳곳에 게시되어 있는 시들이다. 선로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아크릴 방벽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벽면에 많은 시인들의 시들이 게재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읽는 이의 심성을 촉촉이 적셔주리라 생각한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도 몇 편의 짧은 시들이 천장 가까운 벽면에 게재되어 있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 총총한 걸음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표선행 버스를 기다리며/ 가만히 하늘을 본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인가/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리며'라는 시의 전문이다.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를 본 사람들은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지 않을까 싶다. 놀랍게도 이 시는 시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작자 미상 공사판의 낙서'라고 소개되어 있다. 어떤 이가 공사판 벽에 낙서로 끄적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훌륭한 시가 아닐 수 없다.

시는 짧지만 함축된 의미로 사람들의 심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힘이 있다. 물론 바쁜 현대인들은 시를 잘 읽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때는 문학소년,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외로 많은 걸 본다. 이것은 우리들의 가슴 어딘가에 여전히 시적 감수성이 남아있다는 말이 아닐까? 시는 읽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준다. 시는 직설적이 아닌 함축적인 표현 양식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들의 대화는 깊이가 있고 풍요롭다.

얼마 전 한 지인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추석 때 서울에서 아들, 딸, 손자들이 내려왔는데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눠야 할 가족들이 제각각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현대사회의 메마름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전해주는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시가 이 메마른 세상에 단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가 있는 사회는 한마디로 인간성이 살아있는 사회다. 우리가 시를 강조하는 것도 인간미 있는 세상을 가꾸어 보려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시를 사람들에게 읽힐 방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시집을 사보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물론 시를 입시의 수단으로만 다루는 우리교육의 병폐에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독자들이 외면하는 어려운 시만을 고집하는 시인들에게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시를 좀 더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접하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서울 지하철역에 게재된 시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제주에는 물론 지하철역이 없지만 버스정류소는 있지 않은가. 버스정류소에는 버스 시간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풍경이다. 여기에 한 편의 시를 게재한다면 도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시를 읽는 여유와 즐거움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그다지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할 것 같다.

아름다운 풍광 탓이겠지만 제주에는 유난히 훌륭한 시인들이 많다. 이들의 촉촉한 감성과 고차원의 정신세계가 도민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시가 넘치는 제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권재효 시인·제주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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