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동짓달 21일 간드락 소극장에서 제주토종 영화감독 오멸의 4·3극영화 <지슬>의 시사회가 있었다. 부산대학 강의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 수상을 휩쓴 영화 <지슬>의 충격을 한마디씩 거들었고 이어진 술자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시사회에 참석한 현기영, 강요배, 김석희, 박경훈 등 선후배 시인, 소설가, 화가들을 압도한 오멸의 영화 <지슬>은 "머리를 띵하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짙은 연기 같은" 이야기였다.
영화 <지슬>에서 영화감독 오멸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제주를 모르는 관객들, 육지와 외국의 관객들에게 제주 4·3의 비극을 어떻게 소개했기에 대박이 터졌는가. 영화는 우선 지역어인 제주말로 제작됐으며 표준어 자막처리를 했다. 관객은 외화를 보듯 제주판 외화를 통해 제주 역사를 배웠고 그 제주말 영화 덕에 제주를 알게 됐다. 오멸 감독의 슬프고 안타까운 4·3이야기는 그렇게 입 소문이 났고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제주에 진짜 감춰진 미래형 예술가의 아름다운 영상에 깊이 매료됐다.
영화가 시작되면, 연기 자욱한 제주도의 어느 초가집을 군인이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방금 군인들의 주민 학살은 끝났다. 폐허 같은 집 마루에는 제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제삿날 마을은 불타고 사람들은 죽었다. 제사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영혼(신위)들을 모아 굿(제의)을 해 해원하는 것은 영화 <지슬>의 제작의도이며, 영화 <지슬>이 뜻하는 제의(굿)형식으로 하는 해원굿이며, 4·3트라우마의 예술치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소제목이 된 제사의 용어 '신위'는 동굴에 숨어들었던 4·3의 영혼들이며 '신묘'는 영혼을 모시는 굿판, '음복'은 신과 더불어 삶을 영유해야 하는 식량으로서 '지슬'은 나눔이며, '소지'는 신위가 된 영혼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영혼들을 해원하는 '소지사룸'이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보자. 좁은 공간에 다섯 명의 남자들이 한명씩 들어온다. 겨우 목숨을 건져 야트막한 산의 구덩이에 몸을 숨긴 마을 주민들이 평소 하던 대로 티격태격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이, 아니면 방금 전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는 그들 삶의 일상적 관계로 쉽게 옮겨온 말과 행동을 보여줄 때 우리는 이 비극을 보는 감독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멸 감독의 카메라의 앵글은 누군가 다른 이의 시선이 그 현장에 입회해 지켜보고 있다는 암시가 강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군인들이 마을의 한집 한집을 샅샅이 뒤지며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는 장면에서 군인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액션의 단위들을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니라 군인의 등 뒤로부터 그 상황을 깨어있는 눈으로 지켜본다는 입장이 강하다. 누군가의 숨소리로 대치된 사운드가 흐를 때 물론 그것은 이 상황에 비극적인 절망감을 느끼는 스무 살 졸병 군인의 심장소리라는 것을 관객이 알게 되지만 아수라장의 학살극 한복판에 자리해 묘하게 깨어 있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 세속의 비극과 유리된 초월적인 수직적 기운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희생됐던 인물들의 옆에 지방을 태워 날리는 쇼트들이 있다. 영화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감독의 개입이 들어간 쇼트 속에는 제주사람 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태도는 4·3 극영화 <지슬>은 4·3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이며, 제주 사람들의 4·3 트라우마를 영화로 치료하는 해원상생굿이라는 것이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