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겸손한 스카이라인을 바라며

한라산에 겸손한 스카이라인을 바라며
  • 입력 : 2013. 02.19(화)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노형오거리 이마트 옆에는 몇 년 째 보류상태로 놓여 있는 공사장이 있다. 주변 건물 2층 이상에서 보면 공사장의 전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마치 폭발로 생겨난 분화구처럼 잿빛을 뒤집어쓴 채 뻥 뚫려있는 모습이 삭막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부지에 들어설 건물은 예전부터 논란거리였다. 바로 그 높이 때문이었는데, 초고층빌딩이 들어설 것이다, 안된다,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끝에 아무런 결정이 안 난 채 버려진 것이다. 노형오거리의 노른자 땅이 아무런 비전도 없이 방치돼 있는 현상은 '스카이라인'에 대한 확고한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제주의 절망적인 도시디자인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카이라인'이란 하늘이 지상의 건물이나 산세(山勢)등 모든 지물(地物)과 접하는 부분에 생기는 경계선을 뜻한다.

산업화시대 이후, 자본가들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초고층빌딩 건설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그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호화로운 외관과 강한 홍보력 때문에 많은 도시들이 초고층빌딩의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건물의 높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드리워지는 그림자 또한 길어졌다. 국내에도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초고층빌딩의 안전 및 위생 문제는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초고층빌딩은 건설 이전단계에서부터 일종의 트릭을 쓰는데, 그것은 시민들에게 초고층빌딩의 존재가 도시의 홍보에 크게 기여하고 도시의 다른 지역에도 이익을 창줄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초고층빌딩은 주변지역의 주요기능들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이익까지 흡수해버리는 블랙홀일 뿐이다. 예를 들어, 63빌딩에 간 관광객들은 아쿠아리움과 전망대를 둘러본 뒤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 여의도의 다른 관광코스를 둘러보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런 반나절을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초고층빌딩은 도시 전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초고층빌딩은 화려한 조감도로 시민들을 현혹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초고층빌딩만이 클로즈업된 조감도가 아니라 주변 스카이라인과의 조화이다. 초고층빌딩은 도시의 다른 구조물들과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든가, 아니면 '시각적인 공해'가 될 수도 있다. 프랑스의 파리는 일찍이 에펠탑이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이 된 이후로 모든 신축건물들의 고도를 에펠탑보다 낮게 설정했다. 에펠탑은 그 어떤 건물들 보다도 파리를 강력하게 상징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에펠탑이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또한 에펠탑으로 인해 파리가 얻은 이익은 모두 스카이라인에 대한 파리의 확고한 매뉴얼 덕분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최근 제주의 몇몇 곳에 초고층빌딩 건설논란이 일고 있는 현실은 스카이라인의 관리와 조화로운 도시환경을 중시하고 있는 도시디자인의 트렌드와 전혀 맞지 않는다. 제주의 자연지형을 '민낯', 스카이라인을 '화장'이라 비유해보자. 과한 화장은 오히려 민낯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고 촌스럽게 보이게 한다. 제주는 민낯이 아름다운 곳이다. 한 듯, 안 한듯 '투명메이크업'이 필요하다.

<양은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33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