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듯한 원시숲 겨울에도 푸른 치유숲

시간이 멈춘 듯한 원시숲 겨울에도 푸른 치유숲
[길 路 떠나다]'천년의 숲' 비자림
  • 입력 : 2013. 02.22(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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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여년의 국내 최고수령을 자랑하는 '새천년 비자나무'

국내 최대규모 비자나무 군락지
보행약자도 걷기 편한 '착한 길'

겨울숲이라면 나뭇잎을 떨궈내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로 황량한 공간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진한 초록물결이 넘쳐나는 한여름의 숲이나 고운 단풍물결 가득한 가을의 숲은 들뜬 숲이지만, 절정의 계절을 떠나보낸 겨울의 숲은 조금은 황량함이 감도는 고요한 숲에 더 가까워서이리라. 하지만 겨울 적요의 숲이 더 좋다는 이들도 적잖다. 울긋불긋한 트레커들의 재잘거림이 뜸해 천천히 하늘을 봤다, 주위를 둘러봤다 하면서 좀 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찾은 숲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비자림'이다. 오래 전에 가보긴 했지만 겨울철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도 했고, 보통의 겨울숲과는 색깔도 느낌도 많이 다르리란 기대감도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비자림은 44만8165㎡에 자생하는 수령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그루가 밀집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의 비자나무숲이다. 단일수종의 숲으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생태숲이기도 하다.

▲두 개의 비자나무가 한몸으로 자라는 연리목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탐방로 발걸음을 옮기는 길에는 잘 가꿔진 잔디광장과 벼락맞은 비자나무가 눈에 띈다. 그리고 곧 비자나무 숲 입구다. 안내판에서 알려주는 탐방코스는 2곳이다. 어린아이든 연세 지긋한 분이든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송이길 A코스는 왕복 2.2㎞ 구간이다. B코스는 1㎞쯤 되는 돌멩이길이 추가된 코스다. 3.2㎞의 숲 한 바퀴를 돌아나오는데 1시간 20분쯤 걸린다고 적혀 있다.

숲에 발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숲이 내뿜는 기운엔 청량감이 가득하다. "그래, 이 맛 때문에 숲을 찾는 거야."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봄과 여름에 가장 많다고 하지만 비자나무는 사철 푸른 바늘잎나무(침엽수)로, 겨울 산림욕장으로 그만이다. 숲속 비자나무들은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다.

숲을 걸으면서 한 가지 더 반가운 건 너비 2~3m의 탐방로에 깔아놓은 송이(Scoria)다. 송이는 제주의 화산석 부스러기로,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거리는 느낌이 그만이다. 송이는 알칼리성으로 원적외선 방사율과 항균성이 뛰어나 산화를 방지하고 유해한 곰팡이 증식을 없애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름이면 맨발로 송이길을 걷는 이들이 눈에 띄는 이유다.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그루가 자라는 숲은 겨울에도 푸르다.

기분좋은 숲의 향기와 송이길이 잘 어우러진 탐방로에 취해 걷는 내내 촘촘하게 들어서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초록의 비자나무숲이 몸을 감싼다. 주변의 나무들과 경쟁하듯 곶자왈의 돌무더기 사이로 뿌리내린 비자나무들에선 질긴 생명력이 묻어난다.

비자나무는 예부터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썼다. 또 민간과 한방에서는 비자열매를 몸안의 기생충을 예방하는 약재나 기름을 짜서 쓰는 등 건강식품으로도 널리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송이길 마지막지점엔 국내 비자나무 가운데 최고령목인 수령 820년으로 추정되는 비자나무 한 그루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제주도가 2000년 1월 1일 새로 맞이한 밀레니엄을 기념해 제주의 발전을 위해 지정한 '새천년 비자나무'다. 키가 14m가 넘고, 굵기가 네 아름이나 될만큼 숲을 오랫동안 지켜온 터줏대감과 같은 나무다.

새천년 비자나무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비자나무 두 그루가 서로 맞닿은 한몸으로 자란 사랑나무(연리목)가 있다.

느긋하게 숲을 한 바퀴 돌고 나왔더니 찬 기운이 확 달려든다. 숲에선 느끼지 못했던 겨울 바람이다. 그제서야 겨울의 숲이 얼마나 포근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제주시 동부에 위치한 비자림은 번영로를 타고 30분쯤 달려 구좌읍 대천동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10㎞가까이 들어가면 닿는다. 일주도로를 이용하려면 만장굴 입구를 지나 5분쯤 더 자동차를 몰아 평대리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783-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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