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수집가 김혜정, 민속학자이자 민속극의 대가 심우성, 지역주의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귀중한 소장품 혹은 작품이 제주를 떠났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십년전 과거의 일이기도 하고 현재 진행형의 일이기도 하다.
며칠전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제주사람들이 모여 제주를 위해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인사말씀을 하셨던 분 중에는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장 김혜정 선생의 모습도 보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혜정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이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외할머니의 고향인 제주도에 정신지체 '혜정원'을 설립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면서도 고지도 수집에 40년을 바쳐왔다. 수집한 자료 중에는 국내외적으로 희귀한 고지도가 많아 학술적으로 문화재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십년전에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을 위하고 더욱이 외할머니의 고향인 제주를 위해 수집한 고지도 5만점을 제주도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됐다고 한다. 결국 2002년 모든 자료를 경희대학교에 기증했고 이를 기념해 혜정박물관을 개관하게 됐다. 최근에는 경기도에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일본 에도막부 시대의 세계지도인 고지도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 원본을 비롯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도자료 2000여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특히 협약에 따라 기증품을 문화유산 자원으로 공유하고, 활용·확산하기 위한 인적·물적 교류 및 협력을 비롯해 기증 자료를 활용한 전시와 교육 지원 등 다양한 활동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귀중한 문화자원의 가치와 활용을 알지 못하는 제주도의 문화에 대한 빈곤한 인식과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최고의 민속학자, 민속극 이론의 대부, 인형극 연희의 대가 심우성 선생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심우성 선생 역시 2009년을 전후해서 제주를 떠났고 평생 수집한 자료를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유인 즉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서 떠나게 됐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제주도의 빈곤한 문화인식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부인의 고향인 제주도를 위해 평생 모은 탈, 인형, 악기, 옷본, 석물 등 상당한 민속문화 유물을 제주도에 기증해 박물관 설립을 요청했으나 제주도의 유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또한 최근까지 철거논란의 중심에 있는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부분이다. 기증의사를 밝혔으나 제주도는 수용과 논의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다.
제주도를 위해 평생 공들여 수집한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당사자들은 그 열정과 애정만큼이나 서운함과 아쉬움이 크게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미련없이 제주도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분들만 떠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수집했던 귀중한 문화자원들도 제주를 떠나거나 사라지게 됐다. 평생을 통해 수집한 손때가 묻은 귀중한 문화재적 자원들을 기증받아 다양한 형태의 활용, 특히 제주의 환경과 문화를 융합해 새로운 가치의 창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사실 외지에서는 한국의 보물섬 제주에 중국자본의 부동산 개발투자 붐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많은 분들은 땅에 의존하는 개발보다는 제주가 갖고 있는 고유의 문화자원, 그리고 제주와 인연을 맺은 분들이 소유한 귀중한 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문화에 근간을 둔 개발, 문화인식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은 제주도정의 모든 정책분야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