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생로병사]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 입력 : 2013. 03.29(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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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흉부외과 의사가 '나는 자랑스런 흉부외과 의사다'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최근까지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하기 어려웠고 심지어 제목에서 심한 거부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거부감은 자신이 오랜 시간 열정을 받쳐 해 왔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자부심을 온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사람에 대한 지극한 부러움이나 질투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왜 저 사람만큼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가에 대한 자괴감일 수도 있으며 어떻게 하면 저런 자랑스러움을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새기고 살 수 있을 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기도 했다.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최근까지도 마음 바닥에서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었다.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때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앞서 말한 의문을 풀려고 흉부외과를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흉부외과를 하고 싶다고 말한 순간부터 며칠 못 버티고 그만둘 것이라는 조롱 섞인 주변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부모님과 선배들의 적극적인 만류가 시작되었다. 일생을 전화기에 붙들려 마음 편히 한 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살아도 되겠냐는 걱정부터 여성이기에 신체적으로도 금방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우려에 이르기까지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환자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고위험 수술이 많은 과(科)이니만큼 심리적 좌절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칼을 놓게 될 가능성이 많으니 시작도 하지 말라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냥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 젊고 힘과 열정이 있을 때 그저 두려워서 포기한 일이 있다는 것을 후회하게 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나에게 왜 흉부외과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하면서 뭔가 원대한 포부나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곤 하지만 나의 대답은 늘 단순하다. "늙어서 후회할까봐서요". 늘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을 하는 것 같아 이 질문을 좋아하지 않지만 흉부외과를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받게 될 질문이려니 생각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흉부외과를 시작한 지 16년이 되었다. 그동안 아직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통해 나음을 얻은 환자들도 있었고 정성을 다했지만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아픔을 드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흉부외과를 하지 말라고 했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 때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후회라는 것에도 무게가 있다면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를 생각하게 된다. 두려워서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던 길에 대한 후회와 나름의 자랑스러움과 자책이 뒤섞여 있는 '저지름'에 대한 후회를 굳이 비교한다면 전자가 훨씬 더 무겁지 않을까. 두려움을 딛고 용기를 내어 시작을 했다는 것만으로 '나도 자랑스런 흉부외과 의사다'라고 생각하기로 결심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장지원 제주대학교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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