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일본간 최고 격전지였던 사이판 최고봉인 타포차우산 정상. 티니안섬이 지척이다. 이승철기자
괌-일본 본토 연결하는 징검다리 지형태평양 전쟁시기 마리아나 제도 두고 美-日 치열한 전투강제노역 등 통한의 땅 남양군도 최대 격전지
○…한반도에서 동남쪽으로 3000km 정도 떨어진 서태평양 한복판. 40여개의 크고 작은 화산섬이 일본 본토를 향해 줄지어 뻗어있다. 괌과 사이판, 티니안, 로타 등을 포함한 마리아나 제도다. 마리아나 제도는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지만 원시비경을 자랑하는 마리아나 제도의 섬은 태평양전쟁 당시 하나같이 격전지였다. 이곳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수많은 한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갔다. 그러는 사이 일본 제국주의 패망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태평양전쟁의 상흔을 추적하고 있는 취재팀은 3월 21일부터 28일까지 사이판 티니안 로타를 찾았다. 지난해 괌에 이은 1년여 만에 이뤄진 마리아나 제도 탐사다.…○
태평양 지도를 보면 마리아나 제도는 괌과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다. 길이는 560km 정도로 괌에서 오가사와라 제도를 이어준다. 때문에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일본은 마리아나 제도를 두고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일본으로서는 마리아나 제도를 잃게 되면 미국의 직접적인 본토공격을 받게 된다. 바로 패전과 직결되는 상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반대로 미국으로서는 태평양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일본 본토공격의 전진기지를 확보해야 했다. 마리아나 제도를 반드시 차지해야만 하는 이유다.
일본의 항복도 결국 미국이 마리아나 제도를 차지했기에 이끌어낼 수 있었다. 결정타는 마리아나 제도의 조그만 섬 티니안에서 벌어졌다. 이 섬에서 발진한 B29슈퍼포트리스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한 것이다. 끝까지 본토결전을 외치던 일본은 결국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마리아나 제도는 태평양전쟁의 승리를 좌우하는 요충지였다.
마리아나 제도를 차지한 미국은 남양군도 전체를 손에 넣게 된다. 남양군도…. 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하는 남양군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다. 부모, 형제, 혹은 꽃다운 누이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 말 자체가 아픔이자 비극이었고, 혹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실낱같은 그리움의 동의어이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한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끌려가 강제노역과 징용, 정신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통한의 땅이 남양군도이기 때문이다.
남양군도는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부터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할 때까지 통치했던 중서태평양지역을 말한다. 지리적으로는 현재 미크로네시아 지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즉 미크로네시아 중 사이판, 티니안, 로타가 있는 북마리아나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 마셜제도 등을 포함한다. 반면에 괌과 나우루, 오션아일랜드, 길버트 제도 등은 제외된다. 이 광활한 해역은 대략 동서 4900km, 남북 2400km 정도에 이른다. 해역 안에는 623개의 섬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그러나 육지 면적은 서울의 3.5배 정도인 2149㎢에 불과하다. 남양군도의 섬은 대부분 적도 인접한 북쪽, 날짜 변경선 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 드넓은 바다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식민지배화 된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주강현)였던 것이다. 이후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남긴 전쟁의 상처와 식민지배의 흔적은 우리 한인들과 연관된 슬픈 역사 그 자체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한 남양군도로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끌려가 희생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티니안 공항에 남아있는 태평양전쟁 시기의 포대
제주도라고 태평양전쟁의 참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제주도 전체가 일본군에 의해 요새화 된 데다, 남양군도 등지로 강제징용이 이뤄졌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제주도지부(지부장 김복만)에 따르면 태평양전쟁에서 제주도민들은 약 5만 명 정도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파악된 희생자 수는 1804명이다. 상당 수 가 남양군도에서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실태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양군도 가운데서도 사이판과 티니안, 괌 등은 최대 격전지였다. 취재팀이 찾은 이곳에서 전쟁의 끔찍한 상흔은 일상처럼 마주하는 풍경이다. 그것은 녹슨 탱크의 포신에서 혹은 정글에 버려진 장갑차에서 느낄 수 있다. 사이판의 아름다운 해변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육중한 콘크리트 벙커와 뻥 뚫린 포탄 구멍은 당시 전쟁의 치열함을 말없이 보여준다. 티니안과 로타의 정글속은 또 어떤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 가운데 한인들도 부지기수였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제대로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한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 하나 세웠다고 지난 세월의 무관심이 면피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일본은 남양군도 각지에 위령비 등 추도시설물을 설치하고 전쟁성역화 작업을 벌이느라 법석이다. 태평양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