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전쟁의 시대였다. 야욕의 첨병은 일본이었고, 참화의 한가운데 조선이 있었다. 역사를 되돌아보자. 청일전쟁이 1894년에 일어났다. 조선을 삼키려고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 땅에서 싸웠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으로 동양 패권이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다음 일어난 전쟁이 조선과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싼 러일전쟁(1904년)이었다. 일본이 이기고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인받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다. 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 태평양전쟁(1941년) 발발로 이어진다. 이것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과 치밀하게 준비하여 6·25전쟁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을 절멸의 위기에 빠뜨린다. 이처럼 1894년부터 1953년 6·25 정전까지 60여 년 간 동북아지역은 전쟁이 연속이었다.
2013년은 6·25 정전 60년이 되는 해다. 오랫동안 긴장속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세계의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지낸 것은 더욱 아니다. 2000년대에만 들어와서도 이라크, 레바논,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었거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랜 기간 전쟁터였고 파괴와 살육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동북아에 평화가 지속되는 데는 분명 무엇이 있다. 현실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주둔한 미군의 세력 균형자 역할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6·25전쟁 와중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했고, 정전협정에 협력하면서 약속을 받아내고,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은 결과적으로 6·25전쟁 이후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와 안정의 린치핀(linchpin·핵심)"이 됐다. 한국의 경제 번영과 정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쟁시대 60년을 거쳐 평화 6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허물어뜨리려는 흐름이 요동치고 있다. 첫째가 3차 핵실험을 끝낸 북한의 거듭되는 전쟁위협이다. 북에 의한 전면전은 북한과 한·미 양국의 전쟁 능력의 격차로 인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핵무기를 갖고 망(亡)하는 길로 들어서서 자국민의 생명조차 무가치하게 여기는 비정상(非正常)국가가 북한이다. 북의 핵 보유를 현실적인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도발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는 일본의 군국(軍國)주의로의 회귀이다. 침략의 역사를 궤변으로 얼버무리고, 헌법을 개정하여 재무장에 나서는 한 용서받지 못한 전범(戰犯)국가 일본은 또다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최대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셋째가 중국의 부활이다. 미국에 이어 G2로 부상한 중국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군사적 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주변 나라를 굴복시키려는 대국(大國)주의 속성을 은연중 보이고 있다.
우리는 전쟁시대 60년에서 '힘없는 약소국은 짓밟힘의 대상일 뿐 미래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평화 60년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가치 공유'가 안보와 번영의 토대가 됐음을 경험했다. 지금 열강들은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을 틈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새 판 짜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박근혜 정부에 통찰력과 용기와 헌신을 요구하고,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대화가 전쟁보다 값이 싸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성찰 없이 평화가 우리 곁에 다가 올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