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알리는 전조인지 지난주부터 계속 비가 오락가락한다. 이제 곧 본격적인 장마철로 들어설 모양이다. 제주의 장마는 무덥고 습한 정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심하다고 첫 장마를 겪는 제주이주민들에게 미리 귀띔해두기도 했다. 특히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 장마는 약간만 방심하면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기 때문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장마가 습하고 짜증스러워도 어쩌랴.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지.
위안 삼기로 장마철이면 더 매력적으로 빛을 발하는 꽃이 있으니 바로 산수국이다. 가뜩 습기를 머금은 산수국이 영롱한 파란색을 피워낼 때 그 색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어느 화가의 그림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색을 찾아볼 수 있을까. 이처럼 장마가 시작되면 제주의 대지는 짙고 습윤한 색으로 뒤덮인다. 제주의 아름다움이 색뿐이랴. 오름의 굴곡과 손이 베일 듯 한 수평선의 조화는 이미 한 폭의 그림이다. 그래서 제주자연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영감을 얻는데 제주만한 곳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제주로 이주해오는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화가의 아뜰리에, 창작공간,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은 참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쭉 이어져 제주가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예술 섬이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작업하고 싶은 곳 일순위로 제주를 꼽으면서도 여전히 제주로 이주해 오는 것을 주저하거나 힘들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는 작품의 판매망이 여전히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애써 작품을 들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아직 제주도는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할 아트마켓이 전무한 실정이다 보니 냉혹한 현실이 작가들의 제주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아트마켓만 형성된다면 예술창작의 일번지라고 공언해도 충분하다.
아트마켓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갤러리와 아트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을 유인할 어떤 매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페어를 그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세계적인 3대 아트페어인 미국 시카고, 스위스 바젤, 프랑스의 피악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수백개에 이른다. 가까운 대만과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고 국내에서도 서울과 대구, 얼마 전에 열렸던 부산이 아트페어가 좋은 본보기다. 제주가 교통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갤러리스트와 컬렉터들에게 좋은 작품만 있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주는 오히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관광기반시설이 어느 곳보다도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얼마 전부터 제주를 일본의 나오시마처럼 예술섬으로 만들자는 말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일본의 나오시마, 예술가와 갤러리의 천국 미국의 산타페처럼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국제미술제나 아트페어가 개최된다면 제주를 예술섬으로 만드는 일도 헛된 구호속의 망상은 아닐 것이다. '제주'를 고품질의 브랜드화하기 위해서는 아트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고 제주의 미래는 '예술섬, 제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지혜와 전략이 모아져야 하겠다. <이경은 기당미술관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