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혁 제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치매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일상생활 동작부터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는 도구적인 일상생활 동작까지 차례로 익혀가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치매는 반대로 이미 익혔던 기능들을 차례로 잃어가는 병이다. 치매에 걸리면 직업적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수행기능도 많이 떨어지고, 점점 진행되면 결국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고, 대소변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된다.
2012년 전국치매역학조사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치매의 유병률은 9.18%로 대한민국의 노인 10명 중에 거의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 환자들은 스스로 병원을 방문하기 보다는 주로 보호자가 치매 환자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은데, 치매 초기에는 환자들은 자신들의 증상을 숨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보호자를 통해서 환자기억력의 저하 시점, 진행의 양상, 현재 여러 가지 기능 저하 정도 등을 자세하게 알아보게 된다.
늘 진료실에서 느끼지만 배우자, 딸, 며느리등의 보호자들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지만 아들이 보호자로 오는 경우는 대체로 정보가 부족하고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들들의 무관심에 대해서 은근하게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어떤가?"하고 스스로 자문해보면 자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치매에 대한 대중강연을 통해 치매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내가 다른 보호자에 했던 똑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면 무관심한 아들 보호자 중 한명에 속할 뿐이다.
몇 달 전 90세가 훨씬 넘은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70대 후반의 아들이 외래시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면서 그 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진단과 치료 기간 동안에 그 아들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지칠만도 한데 한번도 외래를 빠지지 않았고 끝까지 정성을 다해서 어머님을 모셨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 아들의 모습에는 진심으로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의사는 환자, 환자의 보호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환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을 통해서 늘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반백의 아들 보호자의 정성에 감화하고, 본인도 건강이 좋지 못하면서 치매 시어머니를 꼭 집에서 모시겠다는 며느리의 진심에 감동받았다.
오늘은 꼭 아버님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내가 보호자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핀잔을 듣지 않고 믿음을 주는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준혁 제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