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나팔꽃
  • 입력 : 2013. 07.30(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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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이 슬픈 꽃들이 참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나팔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다 못해 목숨을 잃은 숭고한 사랑. 우리 대중가요에도 이와 비슷한 가사가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 보다 슬픈 사랑아!" 어떤 사랑이었기에 나팔꽃보다 더 슬픈 사랑일까. 어쩌면 허무한 사랑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못 궁금하다.

한 해 살이 넝쿨 식물인 나팔꽃은 6~7월에 피는 여름 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모양이 나팔악기를 닮았다 하여 나팔꽃이라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나팔꽃을 '아사가오'라 부른다. 우리말로 바꾸면 '아침얼굴'이다. 아침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뚱맞게 웬 일본 타령이냐 싶을 게다.

몇 해 전에 업무상으로 일본 규슈지방 어느 소도시 관공서에서 1년여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봄이 한창인 4월이 지나 5월이 들 무렵 어느 날. 깔끔한 넥타이를 즐겨 매던 직원들이 아침부터 작업복 차림으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무릇 필자가 근무하는 부서만이 아니라 전 부서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직원들은 지하 창고에서 주요도로변 화단용으로나 쓰일 만한 길쭉한 대형 화분들을 일제히 꺼내더니 청사 서쪽 벽면 주변은 물론이거니와 사무실 베란다에도 모두 촘촘히 진열했다. 일사분란하게 지하창고에서 화분을 꺼내는 걸 보니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 했다.

우리 부서는 2층이어서 우린 2층 베란다에 화분을 3열로 빈틈이 없이 진열해 놓고 화분마다 흙을 날라 빼곡히 담아 채웠다. 그리곤 그곳에 꽃씨를 심기 시작했다. 그 꽃씨가 피운 꽃이 나팔꽃이다. 처음엔 의아했다. 아침마다 물을 주기를 1주가 지나자 싹이 트고 금세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제법 자라자 줄기들이 뻗어 올라 갈 수 있도록 옥상과 연결해서 그물망까지 쳐 놓았다. 얼마 없어 꽃을 피우더니 여기저기 분홍색 보라색 하얀색 형형색색 나팔꽃들이 제법 커갔다.

7월이 되자 나팔꽃 줄기가 창문 망을 덮어 그늘이 드리워졌다. 더군다나 나팔꽃잎이 바람을 불러드리기까지 했다. 무더운 여름철을 대비해 햇빛 차단용으로 줄기를 뻗는 나팔꽃을 심어놓은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일명 '미도리 커튼'이라 했다. 몇 년 전부터 에너지 절약을 위한 그들만의 노하우였다. 이 나팔꽃 줄기가 자라 베란다 창문을 가리고 시멘트벽을 덮으면 1~2도의 열을 낮추는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햇빛도 차단되고 나팔꽃도 보고 일석이조인 셈이 아닌가. 직원들은 여름용 전기제품을 전혀 쓰지 않았다. 직위가 높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저 손부채를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에겐 손부채는 필수품이다. 에너지 절약이 마음에 깔려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무더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덥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궁여지책의 하나로 나팔꽃을 심는 것도 그 하나의 이유다.

올 장마가 끝나고 여름이 깊어 갈수록 폭염 주의 보도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해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갈 무렵까지 아침마다 나팔꽃을 보며 지낸 기억이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그 후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물으면 당연 나팔꽃이다. <정윤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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