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흑룡만리
  • 입력 : 2013. 09.02(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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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으면서도 아주 긴, 한 편의 시다. 흑룡만리. 제주 밭담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 것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 한 구절에는 제주인의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거친 바람 속에서 박토를 묵묵히 일궈나가는 제주인의 한숨과 땀이 느껴진다. 바야흐로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제주인의 기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TV에서 아일랜드의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의 저항을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였던 것 같다. 아일랜드는 영국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분단돼 있다. 북쪽은 영국령으로 주민 대부분이 개신교를 믿는다. 남쪽은 에이레 공화국이다.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고 있다. 원래는 이 섬 전체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19세기 끈질긴 독립운동 끝에 비록 북쪽 개신교 지역이 제외되긴 했지만 독립국이 됐다. 우리가 잘 아는 영어권 시인 예이츠도 실은 에이레 사람으로서 에이레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면서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돌로 대충 대충 쌓아 놓은 것 같은 밭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흑백으로 찍었다면 최근 선풍을 일으킨 영화 '지슬'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영화 속의 밭담들은 넘실거리는 보리와 함께 필자의 머리속에 짙게 각인돼 있다.

흔히 우리는 너무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제주 밭담이 그렇다. 울아방, 어멍 손발 부르트게 한 저 웬수 같은 돌.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미에 대한 의식은 대상에서 몇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흑룡만리>도 농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식자층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노동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해서 그는 제주 밭담을 미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필리핀의 바따드 지방에 가면 해발 수백 미터의 산이 온통 계단식 논으로 되어 있어 방문객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운남성의 고산지대에도 해발 수천 미터까지 소수민족들이 일궈놓은 계단식 논밭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한다. 규모가 좀 작긴 하지만 우리나라 남해도 다랭이 마을도 꽤 유명하다. 다랭이는 계단식 논이나 밭을 일컫는 순수 우리말이다.

필리핀이나 중국, 혹은 남해도의 다랭이 마을 사람들이 오늘날의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논과 밭을 일구었겠는가.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투를 해왔을 뿐이다. 전쟁을 피해, 혹은 폭정을 피해, 혹은 한뼘의 내 땅을 가져보기 위한 일념으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험준한 산을 찾아간 사람들의 땀과 눈물의 흔적인 것이다. 이 흔적들이 어쩌면 호사가랄 수도 있는 오늘날의 관광객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지도 모른다.

제주의 밭담 역시 수천 년 이어 내려온 제주인들의 땀과 눈물의 흔적이다. 거친 바람과 거친 땅과 싸워야만 했던 그들의 노고가 오늘날 애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외지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경이로운 볼거리다. 이 독특한 경관은 분명 인공에 의한 산물이지만 자연의 일부로 인식된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무자비한 폭정을 연상케 한다면 제주의 흑룡만리는 거친 자연을 극복한 제주인의 승리를 연상케 한다. 하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제주의 밭담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재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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