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 일제 전적지를 가다](140)마리아나 제도<br>르포-(6)원폭발진기지 티니안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 전적지를 가다](140)마리아나 제도<br>르포-(6)원폭발진기지 티니안
핵폭탄 투하 비극… 전쟁의 고통과 아픔 곳곳에 상존
  • 입력 : 2013. 10.30(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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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폭격에도 위압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옛 일본군 항공대사령부 청사. 이승철기자

일본군, 미군과의 결전 대비 거대한 군사시설 구축
원폭피트 오늘날 다크투어 장소로 관광객들 필수코스 자매매김
티니안전투 후 日본토 공격 본격화
제주도 요새화 구상 서서히 구체화


마리아나 제도의 조그만 섬 티니안.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섬은 태평양전쟁 당시 인류역사를 뒤흔든 결전장으로 떠올랐다. 1945년 8월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로 투하된 원자폭탄 발진기지가 바로 티니안 섬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비극과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등 고통스런 역사가 그 어느 곳 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이판에서 8㎞ 떨어진 티니안은 약 100㎢ 면적에 3000명 정도 거주한다. 티니안은 마리아나 제도의 섬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과 독일의 지배에 이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이 섬에는 한인 20명 가량 거주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끌려간 한인 후손들도 살고 있지만 취재기간에 만날 수는 없었다.

6인승 경비행기에 취재팀 2명만이 탑승한 가운데 사이판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불과 10여분 됐을까. 도착한 티니안공항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녹슨 포대다. 티니안 공항의 활주로도 당시 만들어진 비행장 시설이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섬 중앙부를 남북으로 연결한 브로드웨이를 달린다. 티니안의 중심 도로인 브로드웨이는 이 섬의 형태가 미국 뉴욕의 맨해튼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태평양전쟁 당시의 흔적이 다양하게 남아 있다.

▲노스필드 에이블 활주로 내 원자폭탄 피트 전경. 사진 좌우로 원폭피트가 보인다. 이승철기자

섬 북부에 있는 노스필드 비행장 주변은 미국과 일본의 군사시설이 혼재돼서 나타난다.

지금도 여전히 괴물처럼 버티고 있는 일본군 항공대사령부 청사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공습으로 인해 마치 고대 도시의 건축물 뼈대만 남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행장지휘소 등 육중한 콘크리트 건조물들은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밀림 속에 숨겨진 탄약창고와 폭파된 연료창고 내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하다. 발전소와 통신시설, 해안의 벙커, 포대 등도 섬 곳곳에 숨을 죽이고 있다. 일찍부터 이 섬의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군은 티니안에 2600m 활주로 4개 등 남양군도 최대로 알려진 하고이비행장을 건설했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강제 징용 한인들이 상당수 동원됐다. 특히 비행장이 위치한 티니안 북부는 전범기업인 남양흥발이 운영하던 사탕수수 재배농장이 있었다. 전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자 일제는 사탕수수 농장의 한인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을 비행장과 군사시설 구축에 동원한다.

노스필드 비행장은 미군이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을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본 본토공습 기지이자 원폭발진기지로 이용했다.

▲원자폭탄 피트

노스필드 에이블 활주로 북서쪽에는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을 탑재했던 원폭피트가 있다. 원폭피트는 3×5m, 깊이 250㎝ 정도 크기다. 역사교훈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4년 6월 유리조형물로 덮어 보존 전시되고 있다. 내부는 사진 패널 등을 전시 원자폭탄 탑재과정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은 티니안을 찾는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근처 밀림 속에는 원자폭탄 부품과 핵연료를 조립했던 공장터가 남아 있다.

티니안이 원폭발진기지가 된 것은 미군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미군은 태평양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일본 본토공격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가 3만피트의 고공으로 날아 일본 본토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 기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B29폭격기의 행동반경 내의 기지 후보지로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과 그 주변이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결국 1944년 7월9일 사이판을 함락한 미군은 그해 7월24일 티니안의 츨루비치에 상륙한 뒤 8월4일 이 섬을 확보했다. 티니안은 원폭발진기지가 됐다.

티니안을 점령한 후 약 1년 뒤인 1945년 8월6일 새벽. 티니안을 이륙한 '에놀라게이'로 불린 B29폭격기는 2530㎞를 날아 이날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상공 9500m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인 리틀보이(little boy)를 떨어뜨렸다. 3일 후에는 '팻맨'(Fatman)이라 불린 핵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티니안이 인류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하게 된 계기다.

미군은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을 확장해서 노스필드 비행장을 건설했고 이후 미공군기지가 됐다. 이어 일본 본토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기지로 이용된 것이다. 최근에는 미 해병대와 일본 육상자위대가 연합상륙훈련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티니안에서 느끼는 역사의 비극과 아이러니는 제주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이판, 괌, 티니안 등을 확보하면서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도 본격화됐다. 일제로서는 미군과의 본토결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시기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도 점차 커진다. 일제에 의해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제주도를 요새화하는 본토결전 대비 구상이 서서히 구체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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