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악'

[길 路 떠나다]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악'
노랗게… 붉게… 살포시 머금은 가을 한 켠
  • 입력 : 2013. 11.01(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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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탐방로의 하나인 어리목 광장에서 출발하는 어승생악에도 가을빛이 내려앉아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문미숙기자

등반로 왕복 2.6km로 짧고 경사도 완만해 부담 없어
정상에 올라서면 제주시 전경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절경 인근엔 일본군 동굴진지… 아픈 기억의 역사도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10월 16일 시작된 한라산 단풍은 29일 절정을 이루면서 산 전체가 온통 가을빛이다. 그 고운 풍경을 놓칠새라 한라산 등반로마다 노랗고 붉은 단풍색을 빼닮은 차림의 도민과 관광객 물결이다. 단풍 속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서리라.

하지만 힘겹게 등산을 해야 가을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큰 부담없이 가을을 즐길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곳이 바로 '어승생악'이다. 등반로가 왕복 2.6㎞로 짧고, 완만한 오르막이라 부담없이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을 듯 해서다.

어승생악은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로의 하나인 어리목광장 바로 북쪽에 위치한 높이 1169m의 오름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한 분석이 화구 주변에 원추형태로 쌓인 소화산체다.

어승생악 등반로 들머리는 어리목광장 안에 있는 한라산 탐방안내소 바로 옆이다. 제주시에서 어리목광장까지는 1100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30분정도 걸린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어리목광장 입구까지 40분 남짓이면 닿는다.

어승생악은 해발 1000m가 넘는 오름이지만 출발점인 어리목광장의 해발고도가 970m쯤 되는 점을 감안하면 오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등반로는 초입에서부터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다. 온대활엽수림이 울창한 등산로 주변은 서어나무들이 극상림의 숲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한라산 등반로만큼은 아니지만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 고운 빛을 놓칠새라 곳곳에서 사진찍기 바쁘다.

▲어승생악 정상에 서면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서부터 윗세오름, 사제비동산, Y계곡 등 한라산 능선자락을 한 눈에 품을 수 있다.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빨간 단풍잎들이 하나 둘 발밑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30분 남짓 걸었을까? 어느덧 어승생악 정상이다. 짧은 코스이긴 하지만 그래도 완만한 오르막을 계속 걷는 사이 살짝 몸에 밴 땀이 정상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삽시간에 달아난다.

몸만 시원한 게 아니다. 시야도 뻥 뚫린다. 살짝 흐린 날씨지만 북쪽으로는 신제주에서 구제주까지 제주시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와 어우러진 도두봉에서 민오름, 사라봉, 별도봉, 원당봉은 물론이고 제주공항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도 보인다.

제주시내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전망대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마침 가을 소풍을 나온 초등학생들은 망원경 앞에 줄지어서 야단법석이다. "와! 정말 신기하네. 우리집 찾았다. 학교도 찾아볼까?" 하는 말에 옆에 있던 너 댓 명의 아이들은 "정말?"이라며 서로 보겠노라고앞에 선 친구를 재촉한다.

어승생악 정상엔 아픈 역사의 현장인 일제 동굴진지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5년 일본군 제58군 사령부가 한라산을 방어진지로 지구전을 펼치기 위해 구축한 시설이다. 동굴진지는 제주시와 애월·한림 등 서부지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 일제가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한 번에 5~6명이 설 수 있는 구조로 견고하게 만들었다. 동굴진지는 등록문화재 제307호로 지정됐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다른 웅장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가까이는 작은 두레왓과 Y계곡, 사제비동산에서부터 뒤쪽으로 한라산 백록담 정상과 큰두레왓, 윗세오름, 만세동산까지 한라산 능선과 굽이굽이 계곡이 신비롭게 펼쳐진다.

한동안 어승생악 정상에서 주변 경치에 빠져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잠시 비워내며 힐링하는 사이 좋은 계절을 만끽하려는 등반객들이 쉼없이 밀려들어 북적인다.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가는 발걸음은 역시나 가볍다. 올라가는 길에선 놓쳤던 주변 풍경을 살피는 여유까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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