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142)마리아나제도 르포-(8)괌을 말하다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142)마리아나제도 르포-(8)괌을 말하다
두 얼굴의 섬 '괌'에서 또 다른 제주도를 만나다
  • 입력 : 2013. 11.27(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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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톰산 정상부 고원지대에 남아있는 미군 M4셔먼전차. 이 일대에서는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주변에는 수륙양용장갑차 등이 흩어져 있다. 이승철기자

괌 사적으로 지정된 지하 갱도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인들
극한 조건서 원시 도구로 만들어
전쟁유산 정비·보존 자원화 통해
방문객들에 역사체험 기회 제공
대부분 방치한 제주와는 대조적


사이판·티니안 등 마리아나 제도 대부분의 섬들이 그렇듯이 괌도 두 얼굴의 섬이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고급 리조트, 유명 쇼핑가가 즐비한 세계적 관광지이지만 섬 면적의 약 30%가 미군기지로 채워진 군사기지의 섬이다. 이국적인 풍광의 이면에 태평양전쟁 시기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괌의 산 라몬 지역 절벽 단애면 하단부. 이곳에는 제주도 오름이나 해안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 갱도진지가 있다. 입구가 6곳인 지하 갱도진지는 내부가 미로처럼 연결됐다. 내부는 너비ㆍ높이가 2~3m, 길이는 대략 300m에 이른다. 내부 벽면은 곡괭이 흔적 등이 선명하다. 지하 갱도진지는 내부 구조뿐만 아니라 굴착과정 역시 제주도와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괌의 사적으로 지정된 이 갱도진지에는 숨겨진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한인들이 동원됐던 지하 진지라는 사실이다.

입구 안내문에는 '갱도는 강제 동원된 괌의 원주민인 차모르인과 오키나와인, 그리고 한국인들이 극한적인 노동조건 아래서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영문으로 적혀 있다. '극한적인 노동조건과 원시적인 도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두컴컴한 갱도 내부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곡괭이 등을 이용 지하 진지를 굴착했다는 이야기다. 한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인이 강제동원된 전쟁시설물은 또 찾아볼 수 있다.

괌의 거석문화 상징으로 유명한 라테스톤 공원. 라테스톤은 산호석으로 된 높이 200㎝ 정도 되는 돌기둥이다. 라테스톤은 마리아나 제도 원주민들이 원시가옥의 주춧돌 등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곳에도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방공호가 있다. 한인들이 구축한 태평양전쟁 시기의 군사시설이다. 안내문에는 차모르인과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돼서 진지를 구축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와 유사한 산 라몬 지역의 지하 갱도진지.

미군의 상륙해안인 아산비치의 일본군 방공호에도 한국인과 차모르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수 백 개의 갱도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해안에서부터 내륙에 이르기까지 한인의 흔적은 숱하게 남아있다. 한인들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극한의 노동조건 아래서 일제에 의해 섬 전체를 기지화하는데 동원된 것이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은 괌의 깊숙한 고지대 초원인 알톰(Alutom)산 정상부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붉은 대지가 드문드문 드러난 열대의 초원지대를 약 1시간여 걸어갔을까. 벌겋게 녹슨 M4셔먼전차와 수륙양용장갑차(LVT)등이 취재팀의 눈에 들어왔다. M4셔먼전차는 당시 미군 전차의 대명사였다. 주변에는 다수의 무기가 남아 있다. 괌의 정상부 초원지대에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기지 구축에 나선 한인들은 총알받이가 됐다.

괌에서의 기지 구축은 '설영대'가 주로 맡았다. 설영대란 해군작업애국단 등의 이름으로 강제 동원되어 군속으로 징용된 사람들이 소속된 부대를 말한다. 대부분 한반도에서 징용돼 괌의 방공대와 비행장, 혹은 진지 구축에 동원됐다. 설영대는 미군상륙전에는 일본해군육전대에 재편성되어 옥쇄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수많은 한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괌 전투에서 총알받이로 희생되거나, 혹은 옥쇄를 강요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는 괌의 해안가를 중심으로 견고한 요새를 구축했지만 미군의 집중포격에 의해 방어선은 무너지고 만다. 사이판과는 달리 산 라몬의 지하갱도처럼 대형 진지를 구축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괌 전투에서의 실패는 향후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한 일본군의 작전준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해안결전에 치중할 것인지 혹은 내륙결전에 중점을 둘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괌 해안 호텔 앞의 일본군 대공포.

결7호 작전지역인 제주도에서도 일본군은 처음엔 해안결전을 준비했다. 미군 상륙이 예상됐던 모슬포 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비행장 등 대규모 군사시설을 구축하고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진주해있던 58군사령부의 생각은 달랐다. 오름 등지에 대규모 지하 갱도 진지 등을 구축 지구전에 대비할 계획이었다.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등도 해안결전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륙에서의 전투를 상정 지구전을 계획하게 된다.

괌의 태평양전쟁 군사시설은 제주도와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해안가와 오름 등지에 남겨진 제주도 일제 군사시설의 구축 의도 등을 엿볼 수가 있다.

반면에 괌의 전쟁유산은 오늘날 역사문화자원이 되고 있다. 주요 상륙지점은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하고 전쟁을 통해 역사교훈을 찾는다. 해안의 토치카나 포대 등도 괌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또 다른 역사 체험기회를 안겨준다. 제주도의 경우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유산이 대부분 방치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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