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시골의 앞집에는 젊은 부부와 다섯 살 꼬마가 살고 있다. 울타리 안에 한 평의 땅도 없는 작은 집이다. 외지가 고향이고 막노동으로 생활하다 보니 농촌 이웃들과 어울림도 없다. 가끔 부부간 다툼의 큰소리와 아이의 울음이 섞여 들릴 때는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불편하다. 어쩌다 앞에는 꼬마를 뒤에는 부인을 태우고 자전거 나들이 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확 때가 되면 텃밭에서 거둔 호박, 고추, 양파, 고구마 등을 조금이지만 나눈다. 서울 손녀가 생각나서 꼬마 입으라고 털외투도 조심스럽게 건낸다. 이럴 때면 젊은 부부는 육지 시골에서 보내 온 것이라며 참기름, 고춧가루 등을 우리 집 현관 앞에 놓고 간다. 사양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귀(貴)함이나 정성이 너무 크지만 받는다. 나는 하찮은 물질을 나누는데, 이들은 감사의 마음을 베푸는 것 같다.
가까이 지내는 어느 교수는 마지막 강의 시간은 학생들에게 부드럽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며 이렇게 마무리 한다고 알려줬다. "여러분의 절반쯤은 일거리를 찾아 세계 곳곳에 둥지를 틀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 땅에 살아야 한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빈곤과 폐허와 두려움으로부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 냈다. 여러분은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분이 만들어 낼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멋있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자라나는 세대가 지금의 세대보다 현명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인(聖人)에 가까운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기나긴 여정(Long Walk to Freedom)'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타협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승리한 자의 정의'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선택했다. 만델라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이 사라진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론에 투영되는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감추고 싶을 만큼이나 격(格)도 없고 실망스럽다. 세대, 지역, 이념 구분 없이 갈라진 느낌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종교인, 근로자, 교사, 역사학자 등이 뒤엉켜 있다. 상호 질시와 반목과 비방이 어지럽다. 원인과 책임이 어느 쪽이 크고 작은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쪽이 내세우는 진실이나 정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억지가 있을 뿐, 너도 옳을 수 있다는 배려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페스트' '이방인'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베르 카뮈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왜 "정의와 나의 어머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어머니를 택하겠다"며 "정의를 태어나게 한 사랑의 샘이 말라버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는지 그 까닭을 다시 한 번 깊게 이해하고픈 요즘이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일간지를 뒤적인다. 시장에서 나물 팔아 모은 돈으로 마련한 주택을 인재육성재단에 쾌척한 할머니, 온몸 마비 가수 김혁건씨를 다시 노래하게 한 서울대 공대생들의 따뜻한 기술,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미아리 텍사스촌 음악 산타, 직접 만든 쿠키와 컵케이크를 또래의 소아암 환자에게 나눠준 8세 어린이 등 작은 지면을 차지한 훈훈한 얘기들이 많다. '감사합니다'를 조용하게 실천하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안녕하고, 대한민국은 건강할 수 있음을 어느 누가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