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갑오(甲午)년, '갑오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던 1894년의 두 회갑, 120년을 넘기는 의미있는 청마의 해다. 그러니 정말 좋은 세상, 만백성이 해방세상이라 말하는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형과 아우가 싸우지 않고 잘 사는 세상. 욕심 많은 아우가 대통령이 되고, 법 없이도 잘 사는 힘 없는 백성 같은 형님들이 욕심 없이도 잘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싸움은 욕심이 너무 과하여 균형이 깨졌을 때 생기는 것이다. 세상은 욕심 때문에 싸움이 너무 많다. 신이 인간 세상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일이 끝없이 솟구치는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를 조정할 수 있었을까. 세상을 만든 창세신화 '천지왕본풀이'는 세상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세상이 열리기 전에는 하늘도 땅도 왁왁한 어둠의 덩어리였다.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절망 같은 어둠의 덩어리, 천지혼합, 하늘과 땅의 구분되지 않은 무질서를 부수어 새 질서를 만들려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물방울을 만들어 이슬처럼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희망이 돋아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태와 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모으고, 천지왕을 맞이하여 밥을 지어 대접하니 생명을 키우는 세상이 이뤄졌다. 그래서 모든 제(祭)는 신에게 인간 세상의 양식을 대접하는 굿 의식이 됐다.
천지왕은 세상에 내려와 총명부인이 지어준 밥을 맛있게 먹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부인에게 당부했다. 아들을 낳으면 먼저 낳은 건 대별왕, 나중에 낳은 건 소별왕이라 지으라 했다. 총명부인은 아이를 낳았다. 먼저 낳은 아이는 도량이 넓고 큰 마음씨가 착한 아이이니 '대별왕'이라 했고, 나중에 난 건 마음이 작고 치졸하니 소별왕이라 지었다. 원래 천지왕은 공정하고 맘씨 착한 대별왕에게 무질서한 이승을 다스리라 하고 편협하고 맘씨가 나쁜 소별왕에게 저승을 제도하게 하였으나, 소별왕은 이렇게 정한 이치를 뒤바꿔 버렸다. 대별왕과 소별왕 중 누가 저승을 차지하고 이승을 차지할 것이냐는 꽃 가꾸기 내기에서 소별왕은 서로가 키운 꽃을 바꿔버렸다. 잔꾀를 내어 대별왕의 번성꽃 바구니를 갖게 된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고, 이울어 가는 소별왕의 꽃바구니를 차지한 대별왕은 저승을 차지하게 됐다. 그래서 이승 사람들이 저승 대별왕의 맑고 공정한 저승법에 의한 치료는 굿을 할 때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소별왕의 잔꾀 때문에 세상은 난리가 났다. 낮에는 해가 둘이 떠 사람들은 타 죽고, 밤에는 달이 둘이 떠 얼어 죽었다. 소별왕은 세상을 바로잡기에 실패한 것이다. 형 대별왕을 찾아갔다. "형님 어떵 헙네까. 제발 한번만 가르쳐 줍서." "기여, 걸랑 기영 하라(그래, 그건 그리 하렴)." 맘 착한 대별왕은 천근 화살을 당겨 해 하나는 쏘아 동해에 떨어뜨리고, 천근 화살을 쏘아 달 하나는 서해에 떨어뜨렸다. 낮에는 해가 하나 뜨고, 밤에는 달이 하나 떠 그제야 쓸 만한 세상이 되었으나 세상을 가르치는 맑고 공정한 저승법을 소별왕에게 가르쳐주지 못했기에 이 세상은 온갖 범죄의 소굴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내가 세상을 잘못 다스렸으니, 백성이여, 하꼼 맑고 공정한 법이 두루 소통하게 하소서"하는 세상, 동학의 깃발과 함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형님, 대별왕의 나라를 생각해 본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