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완 제주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제주도는 섬이다. 육지로 나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환자들에게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어떤 환자는 위중한 상태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기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난 '못살포' 혹은 '대정 몽생이'라 불리는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기를 꿈꾸고, 상경해 대학을 마친 후 흉부외과의 길을 택했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당연하다는 듯 귀향했다. 왜?
흉부외과 레지던트 2년차 시절, 모슬포 고향집 동네 아저씨가 '급성 대동맥박리증' 을 진단받고,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수술을 했으나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당일날 사망했다. 레지던트 3년차 때는 동네 후배의 이모부가 역시 '급성 대동맥박리증'으로 옮겨졌고, 12시간에 걸친 수술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두 경우 모두 수술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한 분은 관상동맥으로 대동맥박리가 진행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며, 한 분은 우측 하지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하지가 괴사되고 이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모두 시간이 문제였다. 2005년 이후부터는 중환자를 항공편으로 이송해 주지도 않고 있다. 중환자실에 침대를 비워놓고 환자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환자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엄청난 분노와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제주도는 응급수술이 필요한 흉부외과 환자들의 고립 지역이 되고만 것이다. 내 목숨은 하나지만 다른 생명을 한 명 두 명 살리기 위해 제주도로 왔다. 아직 채 3년이 되지 않았지만 응급수술로 10여 명의 환자를 살려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더 배워야 한다. 전문의 동기들은 큰 병원에서 많은 실력을 쌓고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고향이 제주도가 아닌 아내에게 고민을 토로해 보았다. 서울에 다시 가고 싶다고. 친구도 친척도 없이 마치 유배지에 온 것처럼 외로워하는 아내지만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보람으로 사는 것에 가치를 두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2013년 12월1일 일요일,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가 있었다. '복부 대동맥류 파열'을 진단 받았다. 대동맥이 터진 상태였고 수술 후 사망률은 90%에 달할 정도로 중한 상태였다. 응급수술을 했고, 수술대 위에서 심장이 멎어 사망선고까지 했지만 기적적으로 다시 심장이 뛰었다. 5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환자는 20일 만에 걸어서 퇴원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 고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 한 명의 환자라도 살리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흉부외과 의사의 자부심이다. <김수완 제주대학교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