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공간서 접속한 일본과 유럽

열대 공간서 접속한 일본과 유럽
이종찬의 '난학의 세계사'
  • 입력 : 2014. 03.0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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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학(蘭學)은 에도 시대에 일본이 네덜란드로부터 받아들인 서양 학문을 말한다. 난학은 근현대 일본의 이념적 토대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주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에 재직중인 이종찬씨가 쓴 '난학의 세계사'는 일본-열대 동남아시아-유럽이라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속에서 난학을 인식해야 함을 검증해냈다. 일본이 실제로 접속한 공간인 인도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 일본에 이르는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난학의 고전, 의학, 과학, 예술, 지리,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연구 성과를 섭렵한 결과물이다.

난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은 지방의 이름없는 의사였던 스기타 켄파쿠.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서를 접하게 된 그는 거기에 실린 해부 그림이 중국 의학에서 말하는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에 그는 실제로 인체 해부 현장에 참관해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서양 의학의 정확성과 우월함을 확인한 후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4년에 걸쳐 '타펠 아나토미아'라는 해부서를 번역해 출간했다. 이 책이 바로 난학의 시작을 알린 '해체신서'였다.

한편으로 난학자들은 사무라이 계급 출신이었다. 스기타 켄파쿠 같은 하급 사무라이들은 신분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박물학, 회화, 의학, 기술과학에 깊이 천착할 수 있었다. 일본 난학자들은 또한 한문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네덜란드어, 영어, 러시아어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언어를 배우며 유럽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이는 조선의 실학과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유럽-열대 동남아시아-일본을 연결하는 열대 무역과 열대 박물학에 의해 난학이 탄생했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다. 일본은 이미 16~17세기에 주인선 제도를 통해 열대 동남아시아 각지에 일본인 거주지와 정착촌까지 두고 활발한 열대 무역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여기에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동남아시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은 난학의 태동·발달에 중요한 토대를 이뤘다.

전 세계로 표본 수집에 나섰던 식물학자 린넨의 제자들이 열대 동남아시아를 거쳐 일본에까지 닿았던 점도 주목을 끈다. 이같은 열대 박물학은 물(物)중심, 시각 중심의 근대성 형성과 유럽과의 만남에 밑거름이 됐다.

이같은 사실을 통해 저자는 난학이 단순히 일본과 네덜란드 사이의 문물교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열대 공간에서 전개된 일본과 유럽 사이의 문화적 접속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알마.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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