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 예술을 소비한다? 혹자는 이 말에 거부감이 들거나 불편해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개념에서 예술품이라 하면 일상용품과는 그 차원이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을 의미해왔다. 독창적이고 순수하고 고상한 것, 그리고 오직 작가의 손에 의해 창조된 유일한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던 순수의 시대가 있었다. 예술은 곧 진리이며 추앙의 대상이지 생활용품이나 가전제품처럼 편하게 사용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심지어 전시장에 전시되던 작품이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면 예술도 욕망의 산물이고 인간의 정신활동을 위해 쓰인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소비란 의미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 이후로 예술의 경계는 사라졌고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예술품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그래서 우리가 굳이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입거나 먹고 마시는 혹은 보고 즐기는 모든 것들에서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예술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클림트의 작품이 프린트된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클래식음악을 듣고 키스 헤링이나 쿠사마 야요이 작품으로 디자인된 옷과 가방을 걸치고 다니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굳이 오리지널 작품을 찾지 않아도 우리 눈앞에는 예술복제품들이 넘쳐나고 소비자들은 기꺼이 이것들을 탐닉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술은 더 이상은 숭고한 대상이 아니다.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감성마케팅이 발달할수록 예술은 상술로 둔갑되어 소비자를 유혹한다. 때론 이러한 현상에 개운치 않은 씁쓸함을 남기지만 어찌됐건 현실은 예술과 상품이 교묘하게 손잡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용성만 따진 무표정한 제품보다 기왕이면 감성적이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제품에 손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예술은 제품의 이미지를 한층 고차원의 것으로 높이는 탁월한 힘이 있다. 그래서 흔한 것으로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일에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들이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래서 기업들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예술가들이 제품디자인에 직접 참여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통틀어 예술을 통한 기업마케팅이라고 한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미디어를 통한 간접홍보는 마케팅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술소비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경향에 비춰 지금 제주의 현실을 살펴보자. 제주도를 하나의 브랜드로 볼 때 지금까지는 순수하고 깨끗한 청정의 이미지만을 강조하고 마케팅하는 경향이 너무 짙다. 그러나 앞으로도 제주도가 계속 청정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협업을 통해 제주의 아이덴티티를 높여가는 일이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경은 기당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