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 유럽의 많은 미술관들은 저마다 특별한 감동을 준다. 어떤 미술관들은 방대하고 훌륭한 소장품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의 경우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포함하여 3만5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독특한 건물과 뛰어난 기획전으로 관람객들을 사로잡는 미술관들도 있다. 스페인의 작고 쇠락했던 도시 빌바오에 현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티타늄을 재료로 한 아름다운 유선형의 건축물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다. 이러한 현상은 일명 '빌바오 효과'로도 불린다.
방대한 소장품도 주목할 만한 건축물도 없다면 미술관으로의 매력은 없는 것일까? 독특한 운영 철학과 방법으로 관람객의 마음을 끄는 미술관들이 있다. 독일의 작은 도시 노이스에 자리한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대표적인 예다. 200년 가까이 개발되지 않았던 늪지에 작고 개성있는 건물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고, 관람객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산책하듯 다니면서 작품을 감상한다. 전시장에는 작가, 제목, 제작연도, 재료 등 작품에 대한 명제표도, 안내하는 사람도, 지키는 사람도 없다. 관람객들은 매표소에서 받은 지도 한 장만을 들고 전시장을 찾아다닌다. 카페테리아에서는 주변 농가에서 생산한 싱싱한 과일, 달걀, 우유, 잡곡 빵, 잼 등 건강한 음식들이 무료로 제공된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미술관의 기능과 형태에 대한 열린 실험과 확장을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미술관 개념을 제시했고, 이것이 많은 관람객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자연과 평형을 이루는 예술"을 추구하며 9:1의 법칙 즉 자연 90%, 건물 10%의 비율에 따라 미술관을 조성했고, 건물에는 인공조명 대신 자연채광을 사용했다. 미술관 건물을 설계한 조각가 에빈 헤리히는 자신의 조각을 건물로 확장한, 들어가 볼 수 있는 조각-건물이라는 새로운 개념 제시했다. 사용을 넘어선 건물이라는 개념 아래 전시된 작품이 없는 건물도 있다. 전시와 작품에 대한 정보 제공 대신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과 반응을 유도한다.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와 실천들이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렘브란트, 폴 세잔 등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 자연, 자신이 새로운 방식으로 교감하며 휴식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
열악한 재정형편으로 소장품의 수가 적고 내놓을 만한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 미술관들의 현실이다. 또한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전문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기획전 한번 꾸리지 못하며, 그렇다고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물을 갖고 있지도 않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이러한 우리나라 미술관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가 현실적인 문제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미술관에 철학을 담는 것이다. 소장된 작품의 가치가 재발견될 수 있고 작품의 의미가 다양하게 소통될 수 있다. 열악한 재정, 부족한 전문인력 등을 탓하기 전에 미술관이 먼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