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8)남성마을

[골목, 그곳을 탐하다](8)남성마을
화장터 과거 뒤로 하고 남쪽의 별을 꿈꾸다
  • 입력 : 2014. 04.24(목) 00:00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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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마을' 골목에는 2010년부터 골목 집집마다 벽화가 그려지고 있다. 삼도2동 제1방범초소에서 남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벽화를 따라 걷다보면 서당, 씨름, 단오날의 풍경 등 김홍도와 신윤복처럼 조선시대 유명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주민들 십시일반 성금 모아 1997년 '남성마을' 비석 세워
옛 골목에 김홍도 등 풍경 벽화 어우려져 이색 분위기


골목은 삶을 따라 변한다. 사람들이 나고 들다보면 골목 모퉁이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쌓인다. 그곳을 누비는 이들은 때때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기도 한다. 제주시 삼도2동 남성마을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성장해 온 곳이다.



 #남쪽의 별에 담긴 사연

 남성마을은 제주시 남초등학교를 마주하는 동네다. 이곳이 생긴 지는 20여년이 채 안 됐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마을'이란 지명의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 100년 가까이 되는 마을이지만 이름이라고 할 게 없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당시만 해도 '화장터'로 불리던 동네였다.

 "20년 전만 해도 화장터라고 불렸지요. 해방 전에 마을 어귀에 화장터가 있었는데 최근까지 그렇게 불려왔죠. 그러다 보니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양태관 전 노인회장의 말이다. 양씨는 1960년 대 초반 남성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양씨가 이곳에 살기 전 일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산 이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당터

 일제강점기 당시 현재의 남성마을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고 한다. 민가와 떨어져 있는 데다 땅에는 암석이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인들이 화장터로 이곳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화장터라고 해서 별도의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양옆으로 벽이 둘러쳐진 정도였단다. 제주사람들에겐 매장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이곳에서 화장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해방 전의 일이지만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마을은 화장터로 불렸다. 흔적조차 안 남은 이야기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 것이다. 화장터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 탓에 마을에 대한 인식도 좋을 리만은 없었다.

 수십년 전에 화장터였던 곳에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주택이 빼곡히 들어섰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변화도 덩달아 시작됐다. 마을 이름을 만들자는 움직임이었다.

 양태관씨에겐 그때의 일이 또렷하다. 마을이장으로 일하며 동네 인근에 살던 어른들과 함께 마을 이름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을 본 '남성(南星)마을'은 남쪽에서 새롭게 뜨는 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양태관씨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을 귀에 익게 하기 위해 주민들은 힘을 모았다.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1997년 마을 입구에 '남성마을'이 세겨진 비석을 세웠다. 마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니며 마을 이름을 알리자는 움직임도 일었다.

 "마을 이름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택시를 타고 남성마을로 가자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았죠. 그래서 주민들끼리는 더욱 택시를 타고 다니자고 했습니다. 지금은 남성마을이라고 말하면 다들 알죠. 함께 노력한 힘이 컸습니다."



 #오래된 것 속에 새로운 변화

 마을은 이름을 달리하며 변화해 왔지만 골목 곳곳에선 오래된 기억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안을 돌다보면 마주하는 수백년 된 팽나무도 그 중의 하나다. 80~9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니 그보다 오래 이곳을 지키고 있다. 마을의 수호신이나 다름이 없다.

 마을의 옛 당터였던 자리에도 팽나무 두 그루가 지키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무렵 본격화된 미신 타파 운동으로 당신앙은 약화됐지만 그 속에서도 팽나무는 살아남았다.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던 까닭이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민들은 물론 제주성안 사람까지 찾던 곳이었어요. 새마을운동으로 당이 없어지던 때에도 마을 주민들이 반대해 팽나무는 베어지지 않았죠.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당터'라고 불립니다."

 마을에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골목을 엿볼 수 있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다보면 50년 전 시계추가 멈춘 듯한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작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이 골목에는 2010년부터 새로운 색깔이 입혀졌다. 골목 집집마다 벽화가 그려지면서부터다. 삼도2동 제1방범초소에서 남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벽화를 따라 걷다보면 서당, 씨름, 단오날의 풍경 등 김홍도와 신윤복처럼 조선시대 유명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골목 어귀에서 만나는 제주의 옛 풍경은 또 다른 추억으로 다가온다.

 일도2동의 벽화마을인 두맹이골목보다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마을의 변화는 반갑게 다가온다. 마을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키자는 주민들의 노력이 읽혀서다. 남쪽의 별을 꿈꾸는 이들의 손에서 마을은 새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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