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열흘하고도 사흘이 더 지났다. 사고 당일인 16일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대형 참사(慘事)로 번질 줄은 몰랐다. 날이 밝은 오전인데다 구조선박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언론 보도엔 모두가 안도했다. 하지만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안도는 이내 슬픔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통곡(痛哭)의 바다'로 변했다.
이번 사고가 명백한 인재(人災)였음은 곧 드러났다. 그 이면엔 선장과 선사의 무책임한 초기 대응, 위기관리 능력 부재의 정부가 있었다. 언론도 오보 경쟁으로 혼란을 부추겼다. 대한민국의 모든 치부(恥部)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유가족과 국민들은 절망했고 분노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지닌 이들의 망언과 추태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은 그 와중에 좌파(左派) 운운하며 색깔론 조장에 나섰다. 권은희 의원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 행세를 하며 선동하는 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극우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씨는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획책한 반란" 등의 허위사실 유포마저 서슴지 않았다.
장관들의 무책임한 처신과 공무원의 추태(醜態)도 잇따랐다. 사고 수습과 구조를 책임지는 해양수산부 이주영 장관은 사고 발생 닷새째에야 현장을 방문했다 "뭣하는 정부냐, 우리 아이를 살려내라"는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빈소(殯所)에서의 '과도한 의전'과 슬픔에 잠긴 가족들 앞에서 라면을 먹는 등의 '부적절한 처신'이 문제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안전행정부 고위 공무원의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송모 국장은 세월호 사망자 명단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옷을 벗었다. 같이 울며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비통(悲痛)에 잠긴 사람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드는 행태들이었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범국가적 부실체계와 무력한 정부 및 공무원, 모럴해저드에 빠진 정치권 등이 빚어낸 참사다. 침몰한 세월호 속엔 우리 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월호에 탈출구는 있었지만 탈출할 수는 없었다. 사망자는 날로 늘어가는데 구조자 수는 여전히 '174'에 멈춰져 있다.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이제 한숨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으나 거의 체념 상태다. 눈물도 이미 마르고 무능한 정부를 비판할 체력도 남아 있지 않다. 이 기막힌 현실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종교학자 찰스 M. 셀은 "슬픔이란 단순한 서러움이 아니라 상실(喪失), 즉 잃어버림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노란 리본'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노란 리본'은 절망의 우리 사회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하나의 '희망(希望)'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희생된 아이들과 사람들을 더 이상 서럽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인디언 사회에서의 친구(親舊)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를 뜻한다. 우리 모두 '친구'가 되자.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