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악몽같은 2주일이 지나갔다. 온 국민의 가슴이 먹먹하고 공황상태에 이르러 일을 손에 잡지 못한 채 보낸 시간들이었다. 대형 여객선이 전복되는 황당한 사고에, 이어지는 선장과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한 정부의 구조 활동….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함에 온 국민이 공분하고 급기야 며칠전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일반시민이 무능력한 대통령의 하야를 권하는 글까지 게시하고 수십만이 공조하는 댓글을 달기에 이르렀다. 국민 여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관리하던 정권으로서는 매우 놀랄만한 상황이었던지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며 급하게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있는 이 기간에 집권여당은 국민들의 저항이 예상되는 몇가지 법안을 서둘러 처리한 채 함구하고 있고, 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어르신 말마따나 "나라꼴 참 잘 돌아가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더 화가 나는 것은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 때문이다. 아직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수장된 예가 없었고 더구나 희생된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소위 '착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에서 살아난 승객들 대부분은 함내 방송에 따르지 않은, 사회 규범상으로 보았을 때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나쁜 사람들은 소중한 생명을 지켜냈고 착한 사람들은 수장된 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만들어 냈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전통적인 유교사관 속에서 부모와 어른에 순종을 강요하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충직한 황국신민으로 길 들여지도록 강요받아 왔고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온 통제위주의 교육에 길들여지고 특히 군사 독재시절에는 군대식 상명하복의 문화가 학교와 사회에서도 일반화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별다른 큰 변화없이 공교육의 기조로 유지되어 왔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되고 모든 조직구성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교육 받으며 살아왔다. 결국 조직 안에서 개인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불필요한 요소로 각인되어 우리들 스스로 이를 도태시켜 버린 것이라 하겠다.
또한 무조건 어른의 말에 복종하는 착한 아이가 되기를 강요하는 어른들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른 자신들의 편리를 위한 것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고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 통제하는 부모들이 때론 이를 따지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이라고 강제하는 것이 대부분 번잡스런 아이들을 통제해서 본인이 편안해지려는 것임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기발해서 말로는 이길 수 없으니 일방적으로 통제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른은 무조건 옳다고 단정지어버리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모순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만약 어른도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린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지시를 하기보다 "너는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는 "이건 네가 결정해야 될 문제인데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보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였다면 사고가 나더라도 이렇게 스스로 몰살당하는 아이들이 속출하진 않았을 것이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오늘도 화면 속에 진도 앞바다와 분향소가 나타나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자녀와 대화할 때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명령하고 있는가? 아니면 의견을 묻고 있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 살아나길 바란다면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양용진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