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2)/제2부-사라진 성, 훼손된 성곽](6)훼손되고 뒤틀린 현장들

[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2)/제2부-사라진 성, 훼손된 성곽](6)훼손되고 뒤틀린 현장들
성곽 헐리면서 일제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 시작
  • 입력 : 2014. 06.04(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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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 동성 위에 만든 제주기상청 진입 계단. 지금은 폐쇄돼있다. 강희만기자

땅 한평 없는 피란민들 성벽 위에 집을 지어 살기도
잔존 성벽은 문화재범위 확대 등 통해 보존 정비해야

제주성 파괴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일제로부터 비롯됐다. 성곽을 허무는데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일제는 이를 통해 탐라 이래 이어져 온 제주의 역사, 시대와의 단절을 꾀했다. 성곽을 허무는 일에서부터 일제에 의해 강요된 왜곡된 근대화가 시작됐다. 제주성을 허문 자리에는 도로가 뚫리고 건물이 들어섰다. 일제에 의해 강요된 왜곡된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일제의 입맛대로 제주성이 사라지고 도로가 뚫리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지 경관은 오늘날까지 고도로서의 제주시 원도심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었다.

제주기상청 진입 계단 옆 성벽이 잘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제주성은 지속적으로 훼손 멸실됐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제주에 몰려든 피란민들이 성벽 위에 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이후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제주성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제주성 내부에 자리한 원도심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조화로운 풍경,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고도로서의 제주를 이야기하지만 국적불명의 박제화된 도시에 다름 아니다. 성곽도시 제주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오늘날 성곽도시의 자취는 파편처럼 드문드문 남아있다. 탑동 바닷가를 끼고 구축됐던 제주성 북성은 완전히 사라졌고, 제주성 동성과 남성 일대에서만 성곽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지천 북성교 동쪽. 이곳에 제주지방기상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남아있다. 지금은 폐쇄돼 있지만 성돌을 걷어내고 조성한 계단을 통해 기상청을 오르내렸다. 일제 강점기 제주측후소를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제주성 동치성과 성벽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히 자란 계단 하부로 성벽이 20여m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실상 제주성 동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구간이다. 허물다 만 성벽에서 제주성 수난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벽은 바위를 적절히 이용하고 큰 돌을 쌓아올리면서 견고하게 쌓았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제주성 성벽에서 비교적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축조방식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현장이 된다. 하지만 성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돌 사이가 벌어지거나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훼손이 더 진행되기 전에 정비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관덕로 2길 일대 거의 허물어진 치성.

제주시 남성로 25길 일대. 남쪽으로는 몇 년 전 들어선 삼도쉐르빌아파트가 괴물처럼 버티고 섰다. 이 일대는 제주성 남성과 남문지 일대에 인접한 구간이다. 이로 인해 제주성과 원도심의 역사문화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행위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개발행위가 이뤄지면서 성곽 흔적은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가정집 주택 하단부에 성담 기단부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택은 성돌을 걷어낸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성돌이 사라진 대신 성벽 너비만큼 사람들은 집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들어선 주택은 성 너비만큼 해서 30여m 길게 이어졌다.

바로 인접한 곳은 1724년부터 1754년 사이에 제작된 제주목도성지도에 표시된 '일각'터다. 일각 건물은 치성 위에 지어졌다. 하지만 이곳 역시 대나무 등 잡목만 무성한 채 치성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에서 성벽 기단부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주택가 담장으로 이용되는 성벽 구간은 일도2동 1494·1497번지 일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일대도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이 이주해와 터를 잡았던 곳이다. 난리통에 내려와 땅 한평 없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은 성벽 위에 건물을 짓고 살았다. 현재도 주택가 사이로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길이는 60여m에 이른다. 이 일대는 행정에서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여서 늘 훼손우려가 제기돼 왔다.

성돌을 걷어낸 위에 지어진 주택 하부에 성곽 기단부가 보인다.

성벽뿐만 아니라 허물다 만 치성도 볼 수 있다. 관덕로 2길 14번지 일대. 이곳은 성담을 허물고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된 곳이다. 아스팔트 도로 하부는 바로 성곽 기단부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일대에서 10여m 길이의 치성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치성은 한쪽 성벽만이 남아있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근처에는 제주시가 삼도2동 문화예술의 거점 조성사업을 벌이면서 만든 전시공간이 있다. 도로를 단장하는 등 고도로서의 옛 도심을 살리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제주성 훼손현장이 방치되면서 멸실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문화예술 거점 사업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역사유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활성화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처럼 제주성은 성곽 대부분이 일제에 의해서, 혹은 개발과정에서 사라져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행정의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이 그나마 남아있던 성곽마저 지속적으로 훼손위기에 처하면서 멸실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때문에 남아있는 성곽에 대해서는 문화재 보호 범위 확대 등을 통한 보존조치와 함께 단계적인 정비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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