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성지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이자 제주추사관이 있는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정읍성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한곳으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이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인 만큼 한번쯤 찾을만한 곳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날 보단 비가 내리는 날 걷는게 오히려 운치를 더한다. 사진은 대정성지 내 마을 안길의 모습. 최태경 기자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
김정희 유배지·제주추사관 명성
한바퀴 쭈~욱 둘러보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동네 한바퀴 마실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곳곳에 자리한 유적들이 간직한 사연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긴다면 아마 색다른 '길'로 다가오지 않을까.
서귀포시 대정성지를 찾았다. 대정성지보다 이 곳은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와 제주추사관이 있는 곳으로 아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인 대정성지. 대정성지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하나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다. 행정구역상 대정읍 안성리, 인성리, 보성리 일대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년)에 제주목과 정의현 및 대정현 등 3개 지역으로 분리됐었는데, 대정성은 분리된 지 2년 후인 1418년 봄 초대 헌감인 유신이 축성했다. 규모는 1467m, 높이 5.22m라는 기록이 있다. 후에 북문은 폐쇄됐지만 동·서·남·북문 등 4개의 문과 옹성, 문루 등을 설치했고, 6개의 치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차를 타고 왔다면 동문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동문 입구에는 대정마을 유래석과 대정읍 돌하르방, 삼의사비가 있다.
제주도 민속자료 제2호인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제주의 3읍성인 제주성·정의성·대정성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석상이다.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대정성 동·서·남문 앞에 각각 4기씩 총 12기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대정성 돌하르방은 눈을 이중의 음각선으로 타원형으로 새겨 얼굴 면보다 약간 돌출되게 표현했는데, 입 꼬리를 올려 웃는 모습으로 음각된 특징을 보여준다.
삼의사비는 1901년 제주민란 당시 사회적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나섰던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 등 세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1961년 세운 비석은 도로확장 등으로 옮겨 다니며 마모되고 초라해져 대정골 연합청년회원 명의로 새로 단장해 지금 위치에 세워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주추사관과 뒤편으로 김정희 선생 유배지가 눈에 띈다. 제주추사관과 유배지는 성인 500원, 청소년·어린이 300원의 관람료를 내고 둘러볼 수 있다. 김정희 선생이 55세 되던 해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류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지난 2007년 10월 사적 제487호로 지정됐다. 추사 선생은 이 곳에서 8년 3개월을 머물며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추사체'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겼고, 유명한 '세한도'를 그려내기도 했다.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건립됐다. 전신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이다. 하지만 전시관이 낡은데다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그 격에 걸맞게 재건립돼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192㎡ 규모로 재탄생했다.
보성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동계선생유허비.
추사관을 시작으로 송죽사터→송계순집터→정난주마리아묘→한남의숙터→남문지못→단산과 방사탑→세미물→대정향교를 코스로 한 '추사유배길'의 제1코스 '집념의 길'에 대한 안내도 있기에, 대정성지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면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추사관을 끼고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일반 가정집들이 곳곳에 있다. 마을을 둘러싼 성곽도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마주친다. 동네 한바퀴 돌 듯 천천히 걷다보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는데 서쪽으로 계속해 가면 서문을 지키는 돌하르방과 정난주마리아묘 가는 길이 나온다.
아니면 성 중간에서 남문쪽으로 향하면 바로 보성초등학교와 학교 앞에 동계선생유허비를 만날 수 있다. 동계 정온(1569~1641) 선생은 조선 중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으로, 1613년 광해군 5년에 계축옥사에 연루돼 1614년 대정현에 위리안치됐다고 한다. 정온 선생은 제주에 유배될 때 많은 양의 책을 가지고 와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비슷한 시기에 유배된 송상인, 이익과 시문을 교류하며 지방 사람들에게 예를 가르치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도 했다.
대정성지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기에 한번쯤 찾아도 좋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역사적 가치만큼 제대로 복원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현재 서귀포시에서는 대정성 복원을 추진중인데,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추후 제대로 복원될 때, 그 때를 기대해 보면 어떨까.
단순한 마을 안길로 여겨질 수도 있는 곳 대정성지.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날보다는 비가 소록소록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아무런 부담없이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추사유배지 설명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