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뛰어넘자](2)기후변화 무엇이 문제인가/'슈퍼태풍' 임박

[기후변화 뛰어넘자](2)기후변화 무엇이 문제인가/'슈퍼태풍' 임박
피할 수 없는 초속 105m의 위력 대비책 서둘러야
  • 입력 : 2014. 07.14(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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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호 태풍 '너구리'는 제주도를 비켜가면서도 많은 비와 함께 강풍으로 위력을 실감케 했다. 올해는 태풍 빈도가 적지만 엘니뇨로 인해 강한 태풍이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경민기자

필리핀에 몰아친 '하이옌'으로 14조8200억 피해
재해 강한 '슈퍼태풍 대응 방재도시계획' 수립을

1953년 제주지역의 석학 김석익 등 12명이 조직한 '담수계(淡水契)'는 일반인도 탐라의 역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증보탐라지'를 펴냈다. 그 이전에 나온 제주의 모든 지리서 내용을 고스란히 인용 전재한 이 책에 오래 전부터 제주도가 태풍의 길목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 담겼다. "겨울철의 북북서풍과 여름철의 남서풍은 본도의 계절풍이다. 바다 한가운데 고도(孤島)라 초가을부터 태풍을 피하지 못한다."

# 역사 속의 태풍

1601년 선조 임금의 명을 받들고 제주에서 발생한 모반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에 파견된 청음 김상헌은 6개월에 걸친 제주 방문기를 일기체 형식의 '남사록'에 남겼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부터 변화무쌍한 날씨로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던 그는 제주섬에 도착하고 나서도 "파도소리가 밤새도록 성을 뒤흔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재밌는 점은 그가 "밤낮으로 하루 종일 온 시각을/ 물결 소리 내내 성을 흔드네"라고 시를 지으면서 "제주도 사람들은 심상으로 듣걷만"이라고 기록한 점이다. 무서운 제주섬의 날씨도 그렇지만 그 날씨에 담대한 섬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깊었던 것이다.

매년 불어오는 태풍은 제주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위협했다.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제주 삼읍의 민가가 무너지고 사람은 수도 없이 죽었으며, 흉년이 이어지는 해가 반복됐다. 진상품을 실어 나르던 배와 고기잡이 배가 태풍을 만나 통째로 수몰되는 일도 계속됐다. 그럴 때마다 주상은 이재민을 위한 휼전(恤典·나라에서 내리는 혜택)을 거행토록 했으며, 육지의 곡식을 섬으로 날라 연명토록 했다.

세종이 즉위하던 해인 1418년 8월 22일 제주 안무사가 임금에게 태풍 피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7월 27일 밤에 큰 비바람이 쳐서 읍성의 동문과 관사, 민가들이 많이 무너지고 수목이 모두 뿌리째 뽑히고, 여러 포구의 선박들도 많이 떠내려가고 깨지고 하였사온데, 대정(大靜)과 정의(旌義) 두 고을도 이와 같습니다."

여름 태풍은 가을에 흉년을 불렀다. 그래서 세종은 그해 10월 제주 난민을 구제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듬해 1월까지 구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임금의 재촉에 조정은 미곡 300가마를 내려 보내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준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진다.

# 경관도 송두리째

태풍은 경관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산지천이 바로 태풍 때문에 당초의 모습이 완전히 바뀐 대표적인 장소다.

동아일보 1927년 8월 11일자에는 '제주침수삼백, 전도에 폭풍우 엄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제주도는 8일부터 폭풍우가 엄습하야 9일에는 호우로 변하야 주성 내에만 침수가옥이 300여호고 비는 그대로 계속하야 목하 엄중히 경계 중인 바. 산지 근방에는 9일 오전부터 폭풍우로 상당히 피해가 만흔 모양이라더라."

한달 뒤 또 태풍이 몰아쳤다. '제주도에 폭풍우'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9월 13일자 기사다. "지난 1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주도에는 호우가 나리여 교통과 전기가 일시 불통되여 전도는 즉시 암흑세계로 화하여 상세한 것은 알수업스나 제주성내 부근에만 침수된 가옥이 천여호이고 류실가옥이 일백십륙호 죽은 사람이 열명이고 떠내려간 가축이 수를 알 수 없는 중. 길가로 방황하는 사람이 다수인 바 이번 수해는 제주 유사 이래 처음이 되는 참사로 일반은 목하 구제책을 강구 중. 비도 아직도 개이지 안코 계속 중이더라."

그리고 9월 18일자 상보 기사는 당시 쉴 새 없이 쏟아진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교통이 즉시 두절되고, 사망자만도 총 23명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8월 태풍인지 아니면 9월 태풍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이 때 산지천 하구 물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산지천 하류는 지금의 금산수원지 방향으로 직각(┌)에 가깝게 꺾인 뒤 바다로 흘러갔다. 그러나 당시 대홍수로 말미암아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의 내가 지금의 용진교쪽으로 '│'자 형태로 터져 바다와 만나게 됐다. 산지천 하류와 산지포구의 위치가 모두 바뀌게 된 것이다.

# 대비책 마련 공감대 필요

지난 2007년 9월 태풍 '나리'가 제주를 초토화시킨 이후 '슈퍼태풍'이 임박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제주발전연구원도 지난해 12월 발표한 정책이슈브리프 '제주지역 슈퍼태풍의 접근 가능성과 대응방안 모색'을 통해 슈퍼태풍이 제주도에 상륙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당시 브리프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된 2013년 제30호 태풍 '하이옌'은 순간 최대 풍속 초속 105m를 기록했으며, 필리핀 타클로반에 상륙했을 때는 초속 87m의 위력을 발휘했다. 강풍과 높이 5~6m의 해일을 일으킨 하이옌은 1만2000명의 사상자와 420만명 이상의 이재민을 비롯해 약 14조8200억원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필리핀 전체 GDP의 5% 정도가 태풍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주지방기상청과 국가태풍센터는 지난 5월 설명회를 개최해 올해 태풍활동을 전망했다. 이들 기관에 따르면 올 여름(6~8월) 북서태평양에서는 총 10~12개의 태풍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평균 11.2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한반도에는 1~2개로 전망돼 기후평균 2.3개보다 적을 것으로 예측됐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일 제주도를 비켜가면서도 폭우와 강풍으로 위력을 실감케 했던 제8호 태풍 '너구리'처럼 강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 엘니뇨로 인해 강한 태풍이 만들어지고, 이동거리도 늘어나면서 또한 강도는 유래 유지되는 탓이다.

산지천 사례에서 보듯이 태풍은 경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이와 함께 2007년 태풍 '나리'는 인위적으로 바꾼 경관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원위치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불러왔다. 제주 북부지역의 거의 모든 하천을 범람시키면서 '하천 복개'의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간이 바꾼 경관이 자연재해 피해를 얼마나 키우고 있는지 그리고 인위적 경관을 다시 어느 정도 복원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행인 것은 태풍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슈퍼태풍의 접근 가능성을 고려한 자연재해와 관련된 각종 설계 빈도와 설계 기준을 정비하고, 피해복구 대책을 마련하며, 재해에 강한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슈퍼태풍 대응 방재도시계획을 수립하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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