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5만여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불러모은 '난타'
드라마 '별 그대' 등 인기로 중국 한류 새로운 바람
매력적 여행지에 더해 제주 자연·문화 결합한 새로운 콘텐츠 개발 필요
"오후 두시에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칠판에 쓰여진 한국어를 따라 읽는 낭랑한 음성이 강의실을 채웠다. 지난달 19일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에 들어선 주중한국문화원 강의실. 베이징 시민 20명 가량이 3개월 과정의 한글교실 입문반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상 회화를 중심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수강생들의 표정이 진지해보였다.
20대 여성 직장인 차오 훼이빈씨는 "한국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드라마 '풀하우스'에 빠지면서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제주를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했던 배우 김수현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판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프랜차이즈 빵집, 대형 마트 등도 중국인들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치맥'을 브라질 월드컵 기간에도 즐기겠다는 사람들도 만났다. 베이징의 한인 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왕징 지역의 자그만 치킨가게에 손님이 몰려들어 물건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중국인들의 경험담이 들렸다.
한류가 시들해졌다고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화장품, 음식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려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또한번 기회를 맞고 있는 중국의 한류 분위기 속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저렴한 여행 상품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외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는 중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로 여겨지고 있지만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인들을 통해 차별화된 문화관광 상품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주중한국문화원을 찾은 베이징 시민들. 진선희기자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국어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은 "동남아는 졸업사진 대회 등 대학생 대상 인터넷 여행상품이 출시되는 등 저렴한 비용으로 떠날 수 있는 재미있는 휴양지라는 인식이 퍼져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같은 대학의 교수는 "면세점을 제외하면 제주에서 구입할 만한 기념품이 없더라"고 꼬집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문화산업진흥원) 중국사무소 강만석 소장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 정부에서 규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2020년까지 문화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연 12% 이상씩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제주는 중국과 접근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지역이어서 앞으로 자연과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뒤따른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저녁 제주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 '난타' 제주 상설공연장 객석을 채운 관객 중엔 중국인들이 다수였다. 제주지역 '난타' 중국인 관람객은 2009년 2만4000여명에서 2010년 5만여명, 2011년 7만명을 넘겼고 2012년 13만여명, 2013년엔 15만명 넘게 불러모았다. 올해도 지난 6월말까지 제주땅에 발디딘 중국 관광객 중에서 5만1000여명이 '난타'를 봤다. 3년전부터는 매해 7~8월 제주대 아라뮤즈홀까지 추가로 대관해 중국 관람객을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색을 입은 문화상품은 부족한 편이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등 일부 박물관·미술관 등을 제외하면 중국인들이 한류 속 제주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나 프로그램이 드물다. 한해 200만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제주로 밀려들고 있지만 그들이 출국길에 안고 떠나는 제주문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한글교실. 진선희기자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장 "제주한류 지속 위한 킬러콘텐츠는 한라산"
"제주는 한라산이라는 완벽한 콘텐츠를 놓치고 있다. 수준에 못미치는 사설 박물관 입장료는 받으면서 왜 한라산은 입장료를 매기지 않나. 케이블카도 설치해야 한다. 한라산 횡단도로를 일부 통제해 그곳을 말(馬)이나 자전거 등으로 다닐 수 있는 코스로 개발하는 방안도 있다. 한라산은 제주의 '킬러콘텐츠'다."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문화원 김진곤 원장은 지난달 19일 취재팀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한류를 제주에서 불지피는 일에 조바심을 내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라산이라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진곤 원장은 "1990년대 한류라는 말이 등장할 때만 해도 한 때의 바람처럼 스쳐지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그 바람이 불고 있지 않느냐"며 20년 이상 이어진 '한류'라는 사회 현상을 두고'5 S'라는 키워드로 그 방향을 그려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열풍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한류가 중국 사회 전반에 퍼져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수준에 다다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류가 20년동안 지속되면서 그것이 하나의 흐름(Stream)을 이루고 이야기(Story)가 되었다. 스토리가 쌓이면(Storage) 중독에 이르는데 실제 식당에 가보면 모바일을 켜놓고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한류가 몸에 체화되어 가는 현상이다. 이를 통해 한류가 새로운 대안이자 세계 문화의 새로운 표준(Standard)이 되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다. 나아가 음식 한류를 통해 중국 음식문화를 되새겨보는 등 한류가 표준으로 작용한다면 중국인들의 육체와 마음을 보듬으며 영혼(Soul)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한류에 들어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본다."
"한류는 영원할 것이다. 단연코 오래간다"고 강조한 그는 한류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 전통문화의 탄탄함이 외부적으로 꽃피운게 지금의 한류라고 진단했다. 제주 문화의 깊이가 더해질 때 한류 역시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