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가 되었다. 다른 의사들도 그러겠지만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서 그 날의 환자들을 대충 훑어 본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환자가 몇 명이고 다니던 분들은 몇 분이 오셨는지, 그리고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미리 예약하지 못하고 당일 날 급히 외래로 접수한 환자들은 몇이나 되는지. 오늘도 진료대기 시간이 한 시간 이상 길어지며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때로는 고성도 들린다.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어떤가? 네 시간이 넘는 진료시간에도 진료실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진료실안에 들어갈 그때만을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를 떠올리면 중간에 화장실을 가거나 잠시 숨을 돌릴만한 여유는 생각할 수가 없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 한국의 대학병원들의 외래진료를 일컫는 말이다. 병원마다 혹은 진료과마다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 진료는 실제로도 평균 3~5분에 한 명의 환자가 예약된다. 부족한 진료 시간은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다. 첫째, 병력청취와 진찰에 시간이 부족하다 보면 오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환자를 파악하는데 부족한 시간은 오진을 피하기 위해서 방어적인, 때로는 과도한 검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신경과의 경우 자세한 병력 청취 및 신경학적 진찰이 환자의 정확한 진단에 매우 중요한데 병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경우 병력 청취 및 진찰에 걸리는 시간은 10분을 훌쩍 넘기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셋째, 환자들 또한 병원에 와서 궁금한 사항이 많을 텐데 뒤에 끝도 없이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묻지도 못하며 그 결과는 진료과정 전반에 대한 불만 및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진료과정에서 많은 경우 환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을 표시해주어 환자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것을 환기(Ventilation)라고 하는데 이것 만으로도 환자의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져서 병이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도 왕왕있다.
낮은 수가, 정비되지 않은 의료전달체계 등의 한국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이것은 분명히 내 능력밖의 일이다. 다만 이같은 현실 안에서 어떻게 하면 그날 그날 환자와 진료하는 의사들 모두가 지금 보다는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진료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지금이라도 금방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보면, 우선 대한민국은 개원가에도 충분한 진료능력을 가진 전문의가 상당수이다. 대학병원을 무조건 찾기 전에 집근처의 개원가를 먼저 방문해보는 것을 어떨까? 그리고 이미 대학병원의 외래진료는 포화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서 굳이 대학병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을 설득해서 개원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고사상태에 빠진 개원가도 살리고 대학병원도 사는 윈윈전략일 것이다. <최재철 제주대학교병원 신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