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피스크의 '전사의 시대'
중동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
위기지나면 더 큰 위기 닥쳐
서구 거짓과 위선 등 맹비난
아프가니스탄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중에도 파키스탄과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탈레반 반군이 수도 카불의 공항까지 공격해 들어오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는 어떤가. 그 잔학함과 극단적인 종파주의 때문에 알 카에다 조차 거리를 둔다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북서부 지방을 사실상 장악하면서 나라가 세 조각으로 쪼개질 위기에 처해있다. 3년째 지속된 끝모를 내전으로 인해 17만명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 역시 나라의 반쪽이 이슬람 국가의 수중에 떨어질 위기다. 인접한 레바논은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시아파 주민들과 반군을 편드는 수니파 주민들 간 무장 충돌이 이어지면서 또다른 내전 속으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중동 혹은 아랍세계의 사람들은 이처럼 위기와 불안이라는 단어를 일상의 수식어처럼 달고 다닌다. 최대의 위기 다음에 그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오는 형국이다. 이같은 불행의 씨앗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중동문제 전문기자'인 로버트 피스크가 영국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전사의 시대-테러와의 전쟁, 그 10년의 기록'은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는 책이다. 칼럼은 9·11 공격 이후 조지 W. 부시 정권과 토니 블레어 내각이 아프가니스탄과 파기스탄·이라크 등지에서 한창 '테러와의 전쟁'에 온갖 인력과 돈을 쏟아붓던 시기에 쓰여졌다.
베이루트를 기반으로 38년간 중동 이곳저곳을 취재했던 지은이는 11개의 굵직한 전쟁과 셀 수 없는 분쟁을 지나왔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사브라-샤틸라 학살 현장에서 산처럼 쌓인 시체들 사이를 절망 속에 헤매고 다녔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공습에 분노한 난민들의 공격을 받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적도 있었다.
인생의 절반을 분쟁과 함께해온 그는 이 책에서 중동 지역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과 비극, 그것을 야기한 서구의 거짓과 위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을 죄어오는 공포를 전하고 있다. 특히 세상의 모든 테러리스트를 뿌리뽑지 않으면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며 두려움을 강요하고 자신들의 편에 서서 싸우지 않으면 테러리스트와 같은 편으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하며 우리 모두를 중동의 모래사막으로 끌고갔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향해 비난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그는 중동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 같은 '서구의 적'뿐만 아니라 '선과 악의 전쟁에 이름을 올린 모든 이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최재훈 옮김. 경계.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