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즐겁다.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고, 일본시리즈는 이대호가 활약한 소프트뱅크가 우승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코리안시리즈의 재미와 관심은 최근 몇 년간 절대왕자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라이온즈라는 탑독(topdog)에 대한 저항 심리이건 약한 팀을 응원하는 언더독(underdog) 효과이건 아무래도 괜찮다. 홈런포에 환호하고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멋진 수비에 박수를 보내면 된다. 하지만 언더독 응원이나 탑독 견제는 제3자에게나 가능하지 삼성팬이나 넥센팬에겐 해당 안된다.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에서 건전한 국민에게 방관자가 되라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대북(對北) 전단(삐라) 문제도 그 하나다. 북한의 권력자 3인의 난데없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은 우리를 시험하는 전초전이었다. 3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12시간 동안 보여준 말과 행동은 실체가 없었다. 전화통지문 몇 자로도 해결이 가능한 고위급회담 합의라는 미끼를 던져 남남갈등에 불을 댕기고, 자신들의 존엄을 건드리고 정통성을 시비하면서 체제유지를 불안하게 한다는 이른바 삐라 제거라는 물밑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역시 남한을 다루는 기술은 프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내부는 난리가 났다. '5·24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하라느니, 남북정상회담을 내년쯤에 열어야 한다느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북한에 대한 인지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임진각에서는 "극심한 이념갈등을 겪었던 해방정국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복면이나 마스크를 착용한 정체모를 사람들과 풍선을 날리려는 사람들 사이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역시나 고위급회담은 없었다.
도대체 전단이 무엇이길래 북한이 막지 못해서 안달인가. 전단에는 대한민국의 발전상, 북의 3대 세습과 역사왜곡, 기독교 관련 내용 외에 '고모부까지 처형한 패륜아 김정은' 등이 적혀 있다. 풍선에는 1달러짜리 지폐, 소형 라디오, CD, 라면, 스타킹, 라이터, 설사약 등 생필품이 들어 있다. 진실이 거추장스러운 절대자 김정은이 분을 삭이지 못할 만도 하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는 독일통일을 가능케 한 요인 하나는 서독 TV다. 동독인들에게 서독 TV는 정보의 전달자, 시위를 부추기는 촉매, 진실을 알려주는 교육자였다. 그래서 동독 내에서 서독 TV 시청이 안되는 지역을 '무지의 골짜기'로 불리었다. 그렇다. 알지 못하면 원(願)할 수도 없다. 북한 주민들에게 북녘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까. 당신들이 왜 굶주림에 허덕이는지, 당신들에게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인권과 자유가 있는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당신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잘 산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그의 딸 소피 슈미트는 북한을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작된 인간의 삶을 그린 코미디 영화)에 비유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자신의 나라에 잡혀있는 의식 없는 인질"이라고 꼬집었다. 참 기막히고도 슬픈 진실이 아닌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철저히 은폐된 곳. 그곳을 정상(正常)에 가까이 가게 하는 방법은 '정보자유화'가 거의 유일하다. 진정성 있는 남북한 간의 대화도, 한민족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통일의 길을 찾는데도 예외가 아니다. 자스민 향기가 왜 북한에서는 피어오를 수 없는가? 진실을 알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를 북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다!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