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림칙한 병원을 들르는 원인의 많은 부분이 속이 불편해서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의 말 속에 녹아있는 정서를 보면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다. 욕 먹었다, 1등 먹었다, 그 사람한테는 잘 먹힌다, 한방 먹여, 말아먹었다, 먹고 떨어져….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이 먹는다는 것과 연관이 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위암 발생률이 가히 세계 1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도 그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소화가 안되고 속이 아픈 경우 문득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문득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혹시 내가 위암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복통과 함께 알지 못할 공포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병원을 찾는다. 속이 쓰리고 아프고 명치가 아프고 가슴에 고춧가루를 뿌린듯한 통증이 있는 것. 그리고 그 증상은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하필 지금이 훨씬 더 심한 것 같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면 중증의 위암 보다는 치료 가능한 위-식도 역류질환이 진단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대학을 다니고 수련을 받던 시절 근무하던 병원을 찾던 환자들은 모두 이런 증상을 "체했다"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체했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당시 그 단어는 병원 내에서 금기어였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였다. 마음속에 반발이 있었지만 현실에 동화되어야 했다. 이제는 서구인들 조차도 체했다라는 의미에 대응하는 단어의 선택이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장이 둔하기 때문이다.
내장 감각은 부위별로 다르겠지만 등 피부보다도 훨씬 둔하다. 항문은 좀 민감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가득 차 있는 경우 그것이 가스인지 아니면 변인지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해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실수하지 않게 해준다. 입술과 구강은 오히려 손보다도 감각이 더 뛰어나다. 그러나 장관의 대부분은 매우 둔한 감각만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둔한 신경으로 뭔가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그 감각을 해석하려고 애쓰게 된다. 해석에는 그 사람의 경험과 마음의 상태가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길러진 능력일 것이나 애매한 정보로 많은 것을 유추하려고 할 때 오히려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짐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 환자는 속이 아파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쓰러질 곳을 찾아온 것 일수도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 짐을 내려 놓으시라. 그리고 둔한 내장의 신호를 믿지 말고 긍정의 힘을 믿어보시라. 검사를 하는 동안에는 속는 셈 치고 확률을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외워 보시라. 속이 아픈 경우는 위-식도 역류와 같은 가벼운 병이 위암 보다 훨씬 더 많다고.
<김흥업 제주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