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주의 대표적인 관공서라면 도청, 시청, 경찰서 등이 있을 것이다. 관공서 하면 가장 먼저 무표정하고 위압적인 건물의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대부분 민원을 해결하러 가는 경우에나 관공서를 찾는 일이 많고 딱히 이외에 별다른 일도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산타페라는 도시를 가 본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이자 관광도시로 꼽고 있는 곳이 이곳 산타페이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도시일 뿐만 아니라 미국 3대 미술시장으로 꼽히는 예술도시이기도 하다. 최근 뉴스에 소더비 경매에서 꽃그림 1점이 495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해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평생토록 사랑했던 곳이자 그녀의 미술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겨우 인구 7만명이 거주하는 매우 시골스러운 소도시이지만 고유한 인디언문화와 스페인문화가 뒤섞여 만들어낸 신비하고 독특한 어도비 스타일의 건축이 유럽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 도시의 모토는 첫째, 어도비양식의 집에 살 것. 둘째, 예술가가 될 것. 셋째, 재활용을 할 것이라니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도시 곳곳에는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수준 높은 공공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의 수준뿐만 아니라 적절하고 또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예술도시로서 산타페의 정점은 갤러리들이 즐비한 캐니언로드에 있다. 길 양쪽으로 죽 늘어선 갤러리들을 순례하듯 미술품들을 감상하고 있자면 하루해가 야속할 정도이다.
갤러리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작품들이 대부분 지역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필자가 정작 놀랐던 것은 뉴멕시코 주청사를 방문했을 때이다. 평범한 인상의 외관과 달리 내부에 들어서자 수백 점의 작품들이 벽면들을 채우고 있어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갤러리에 와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로비, 복도, 사무실 등 모든 벽들이 미술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장르도 다양하게 구성돼 있었다. 관공서라는 기본적인 기능과 미술품 전시를 조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미술품이 건물의 장식물로 전락하거나 너무 과하면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주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오히려 쾌적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봤다. 전시작품의 배경이 되는 벽면의 디자인과 복도에 배치되어 있는 가구, 문, 손잡이 등 모든 것들이 미술작품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고 특히,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사인물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웠다. 누가 이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고 관리하고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편 주 청사건물을 보고나니 산타페시의 문화, 예술의 수준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부러웠고 우리 제주도에 있는 많은 관공서들의 자화상들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는 늘 관공서의 정면에 걸린 세계, 국제, 최고 등의 문구가 조합된 표어들이 도배된 관념적인 관공서의 이미지들이 차지하고 있던 사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예술의 도시,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라면 관공서도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경은 기당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