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9)서귀포시 송산동 보목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9)서귀포시 송산동 보목리
  • 입력 : 2015. 02.2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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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기오름에서 바라본 보목리(위)와 마을회관 부근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아래).

섶섬과 제지기오름으로 이어지는 경관은 '한 폭의 그림'
천연기념물 제18호 파초일엽 국내 유일 자생지인 섶섬
수자원의 보고 수중경관 으뜸… 스쿠버들 탄성 자아내
천혜의 바다환경 제주 대표하는 '자리돔 마을'로 명성
사유지인 제지기오름을 시민공원으로 개발하는 소망도



포근한 마을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이 속에서도 이 곳 보목리의 품속은 따사롭다. 한 폭 한 폭 그림들로 짜여있는 마을. 섶섬과 제지기오름이 있어서 바닷가에 풍성한 멜로디를 제공한다. 마을 중심을 S자 형태로 가르며 바다로 향하는 정술내를 따라 품격 있는 나무들이 역사의 향기를 풍기는 듯 하다. 비라도 심하게 오는 날, 내가 터지면 물소리 또한 그윽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비옥한 토양이 있어 소출이 좋다. 가장 큰 특징은 해안선이 참으로 아기자기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보목출신 한기팔(79) 시인이 들려주는 설촌유래는 원래 보애목포라고 하는 포구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볼래낭이 많아서 볼래낭개라고 하던 것을 한문으로 표기하였으리라는 추정과 함께. 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덤벌왓에서 발견된 무문토기 파편들은 이미 서기 1세기~3세기 사이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촌락을 형성하게 된 것은 비문들을 근거로 600년 전. 크고 작은 포구로 활용하던 곳들과 나지막한 절벽들의 조화로움. 엉캐물, 큰개머리, 조근개, 동애기, 구두미, 수루막, 누알, 쌈싸니코지, 소래개, 귀영여, 방석덕. 지명들 모두가 들고 나는 모습이 오밀조밀한 보목리의 바다를 더욱 정겹게 한다. 섶섬이라는 바다환경이 자리돔들을 불러 모은 것일까. 대대로 자리돔을 뜨는 테우들이 많았다. 자리돔축제를 열 정도로 '자리돔' 하면 보목리를 떠올리게 된다.

보목리 입구에 가로수로 심어진 키 큰 종려나무가 남국의 정취를 더해준다.

서귀포시제 실시가 되면서 서귀동 일부와 동홍동, 토평동 일부를 합하여 송산동에 포함되었다. 동쪽으로는 세경물을 경계로 하효동과 접하고, 북쪽으로 신효동 소학남마루와 토평동 마시물, 서쪽으로는 빌로통 분지가 경계를 이룬다. 앞바다에 섶섬은 약 4만여 평, 높이가 155m가 되는 무인도다. 아름다운 경치 못지 않게 수자원의 보고로 어패류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수중경관이 빼어나기로 세계적인 스쿠버들이 타성을 자아내는 곳이다. 섶섬이 간직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열대식물인 파초일엽.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바다의 신이 빚은 예술품이라고 극찬하는 보목리. 제지기 오름에 올라 내려보면 실감하게 된다. 바다에 떠있는 섶섬 뒤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며 반사되는 태양광선을 보면 환상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보목리의 이런 풍광을 탐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지기오름을 비롯하여 37필지 12만5000㎡ 상당의 보목리 내에 있는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재단법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다.

천연기념물 제18호 파초일엽 자생지인 섶섬.

고경신(60) 전 마을회장은 깊은 문제의식으로 마을 땅에 대하여 입장을 피력하였다. "환경보전지역에 묶여서 개발도 되지 않을 제지기오름을 서귀포시가 매입하여 공원으로 만들어야 마을 발전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수 없이 서귀포시에 건의하고 또 건의해도 예산 타령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많은 땅이 외지인에게 잠식이 된 상태지만 어떤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지기오름을 서귀포시가 매입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주민들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서귀포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제지기오름을 시민공원으로 품격 있게 개발하면 바닷가와 인접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될 수 있다는 기대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해치는 하수처리장 시설인 맨홀.

검은 현무암 바위들로 가득한 풍부한 조간대는 보목리 환경의 가장 중요한 보고다. 하수처리장이 들어오기 전, 정술내가 바다와 만나는 앞개와 엉켜물에는 장어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으며 감성돔 치어들이 노닐고 있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의 멱 감는 놀이 공간. 너른 조간대 지역에서 쉽게 반찬감을 채취하여 밥상에 올렸던 사람들의 땅 마을이다. 지금도 환경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 또한 마주하고 있었다. 작년 5월에 마을 전체를 뒤덮은 오수 악취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이 그것이다. 하수처리장이 강우량이 일정 정도를 넘으면 오수 처리를 할 수 없어서 맨홀 뚜껑을 열고 역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한우지 마을회장

한우지(61) 마을회장은 "주민들은 오수와 우수가 당연히 분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20년 세월동안 이런 상태로 보목리 앞바다가 얼마나 황폐화 되었는지 모른다. 이에 상응하는 행정책임을 물을 것이다." 명확한 원인규명과 극복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열려있다. 무엇보다 선비마을의 전통에 따라 인재를 키워냈기에 그렇다. 80년 동안 교육자만 370명을 배출한 마을이다. 600여 호 마을에서. 출향인사들의 애향심 또한 대단하다. 마을회관 건립에 성금을 모아내는 액수가 다른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능동적인 발전전략들을 마을회에서 마련하고 있었다. 바닷가 관광지로서 지중해 그 어느 휴양지와 뒤지지 않을 그런 시설과 여건 조성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보목리가 고향인 제주대학교 양영철 교수가 그리는 30년 뒤 보목리는 '외형보다 내면에 충실한 알부자 마을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주민들이 마을회를 중심으로 공동체 개발방식을 선택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확신. 보목리는 작지만 아주 강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봉착한 난제들을 극복하는 마을 결속력이 놀라웠다. 한기팔 시인의 <甫木里 사람들>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에 와서 보면 그걸 안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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