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는 어디입니까?" 시작과 함께 들이대는 강사의 돌발 질문에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제주도 아니오"라는 답이 두 세 곳에서 나온다. 여기서 도는 섬 도가 아니고 행정단위 도라는 보충설명에, 바로 "경기도"라고 답한다. 우문에 현답임을 시인하고 밝힌 이유는 이렇다. 우리나라가 모슬포 코앞에 있는 이어도에 대해 확실한 권리를 행사한다면 남한면적의 60%쯤 되는 약 6만㎢에 이르는 주변해역을 앞마당처럼 쓸 수 있다.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道)는 제주도가 된다. 미소가 번진다.
이제 말문이 트였다. 2탄 공세를 퍼붓는다. 살아서 신으로 행세했고 죽어서까지 신으로 대접받는 김일성을 칠판에 올려서 혼낸다. "여러분, 흰 쌀밥에 고깃국이란 말 아시나요?" 어려운지 수군거림만 들린다. 김일성은 6·25남침이 실패로 끝나자 박헌영 등을 사형시키고 나서 1957년에 이런 말을 한다. "조선 인민은 머지않아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게 될 것입니다." 36년 전에 했던 말을 잊었는지 김일성은 1993년 신년사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의 손자인 김정은은 2012년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라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60년이 다 된 헛소리가 언제쯤 그칠는지 기다려진다는 어깃장에 "백년하청"이라고 맞장구 쳐준다.
대학생들의 눈이 살아 있다. 강사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다. 본심을 드러낼 때다.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멍석을 깔아본다. "여러분 가운데 6·25전쟁에 참전한 역전의 용사가 계십니까?" 조용하다. 질문을 잘못 던진 것이 아니다. 여기 노인대학생은 70-80세다. 나이가 어려 참전은 못하셨지만 전쟁의 참혹함은 몸소 겪었을 것이다. 그것이면 대화를 풀어가기에 충분하다. 스탈린과 김일성·박헌영의 모스크바 남침 밀약,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베이징 면담, 소련의 엄청난 전쟁물자 지원, 남한의 농지개혁법 시행과 토지를 소유하게 된 농민들이 나라 지키는 데 앞장 선 이야기 등을 덧붙인다. 사람들은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속에는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군기지도 필요 없다는 주장이 섞여 있는지 모르겠다. 남이 지켜주는 평화가 진정 평화일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준비를 하라"는 경구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이 보인다.
너무 딱딱한 느낌이다. 예로부터 노인들 곁에 있다는 다섯 가지 형벌과 다섯 가지 즐거움을 화제로 바꾼다. 여기서 형(刑)은 불편한 것, 힘든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목형(目刑)은 눈이 나빠져서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다는 의미라며 차례로 치형(齒刑), 각형(脚刑), 이형(耳刑)을 설명한다. 마지막 궁형(宮刑)은 무엇인가? 미소 짓는 남학생의 표정에서 알고는 있지만 여학생 때문에 대답을 꺼리는 눈치다. "궁형이란 예쁜 여자를 보고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자 웃음이 터진다.
안보특강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깊이 패인 이마의 주름과 엉겅퀴 같은 억센 손마디의 주인공, 대학생이라 불리는 이 어르신들이 누구인가?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불공평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썩은 돈이 아니라 땀의 대가로 세상 살았다고 뽐내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내일에 대한 염원은 짙다. 이제 혜안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어르신들, 자라나는 세대가 지금의 세대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대정노인대학 문공일 학장님과 대학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