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제주, 희망은 사람이다]고봉황 드라마 작가

[더 큰 제주, 희망은 사람이다]고봉황 드라마 작가
"대본을 쓴다는 것, 나를 치유하는 과정"
교양작가로 경험 쌓고 드라마 전업
  • 입력 : 2015. 07.01(수) 00: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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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황 작가는 방송계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는 지난 5월 3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종영한 KBS 드라마 '당신만이 내사랑'을 집필했다. 그는 "드라마 작가로 사는 것,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부미현기자

성장기 가정사 다양성 추구 밑거름
여성·중장년 공감하는 내용에 심혈
"제주, 예술가 양성 기본환경 갖춰 창조적 역량 길러주는 교육 필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접하는 TV 드라마. 지친 현대인에게는 어떤 비타민 보다도 강한 활력소가 된다.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도 한다. 드라마가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드라마 작가가 갖는 위상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제주 출신 고봉황(46·사진) 작가도 방송계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고 작가는 지난 5월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30% 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드라마 '당신만이 내사랑'(KBS 1TV 2014년 11월~2015년 5월)을 집필했다. 자극적인 소재를 배제하고 일일가족 드라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요즘 흔치않은 작품이다. 고 작가는 집필경험이 많은 작가들만이 소화할 수 있다는 황금시간대 공중파 일일연속극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면서 베테랑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앞으로 더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고 있는 고 작가를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동 집필실에서 만났다.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드라마를 마치게 돼 정말 기쁩니다. 배우들과 감독 이하 제작진들이 정말 잘해줘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집 근처 사라봉에 있던 만덕할머니비를 지나칠 때마다 만덕할머니의 조냥정신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제가 쓴 드라마도 한지붕 아래 각기 다른 가족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를 소재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만덕할머니처럼 서로 돕고 사는 그런 미덕을 심어준 제주에서 자라 좋은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만이 내사랑'은 한지붕 다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최근 1~2인 가구가 늘고 경제적 이유로 주거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사회현상이 소재가 됐다. PD출신으로 과일 시장 상인이 된 여자, 홀아버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중년 여자, 싱글 대디, 외국인까지 담았다.

최근 드라마 작가는 공모를 통해 데뷔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 작가는 24세때부터 교양작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뒤 드라마 작가로 전업에 성공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기에 국문학과(한양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시인을 꿈꿨는데 취업은 안중에 없고 영화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만 하던 저를 보고 친언니가 방송작가 교육원을 등록해준 게 드라마 작가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사실 성장기에는 가족 드라마를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판타지도 가졌구요. 그러면서 조금씩 드라마 작가를 꿈꾼 것 같아요."

고 작가는 드라마를 쓰는 일은 드러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가정 경제를 위해 파독 간호사로 떠나 어머니가 부재한 유년시절의 경험이 있다. "결국 진정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는 작가가 가장 아파했던 이야기에서 변주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게 작가의 결정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겪은 여러 경험이 작가로서는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착한여자 백일홍'(2007~2008) '내 인생의 단비'(2012) 모두 상처받은 모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성들의 연대로 치유된다는 주제가 공통적이다.

성공한 작가인 그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누구 못지않게 힘든 단련의 시간을 거쳤다. 대학 졸업 후 드라마 작가 공모에 도전했다가 보기좋게 떨어진 뒤 방향을 선회해 방송 구성작가로서 경험을 쌓아갔다. '전국은 지금',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이것이 인생이다','체험 삶의현장' 등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교양작품을 만들며 작가가 되기 위한 담금질을 했다.

드라마 작가로 이름을 알린 이후에도 방송계의 속성 상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드라마가 제작여건 때문에 무산되는 경험도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그의 소설 '비바리'도 3대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의 규모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무산된 바 있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뒤 구성작가를 해서 내공을 쌓고 30세부터 드라마를 하자고 목표를 재설정했습니다. 구성작가를 하다보니까 하루 60페이지도 쓰고, 빨리 쓰는게 장기가 되서 어느날 방송사 교양국의 추천으로 일요 아침드라마(결혼이야기)를 쓰게 됐죠."

깊이가 있고 다양한 경험은 일일연속극 작가로 발탁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일일연속극은 미니시리즈와 달리 어린 세대부터 노인 세대까지 전 세대를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일연속극이 '한국인의 밥상'과 같다고 얘기하더라구요. 6개월을 끌고 가야하니 이야기판이 커야 하죠. 특히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중장년층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갖고 있는 경험의 깊이가 큰 영향을 줍니다."

드라마에서 종종 표현되는 드라마 작가들처럼 고 작가도 집필중에는 작업실에서 보조작가 2명과 함께 밤낮없이 일한다. 고 작가의 경우 가능한 드라마의 설계 작업을 하는 기획단계를 충분히 확보한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매번 3주 분량의 원고를 미리 써놓았다. 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신의 대본에 대한 평가다.

"작가란 직업은 상처를 많이 받는 일인 것 같아요. 이걸 긍정적으로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는 제주가 예술가로 성장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만큼 창조적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만 뒷받침된다면 인재들의 보고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제주의 후배들에게는 인문학 서적 독서와 함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같이 끌고 가는 게 작가들의 또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 지망생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편지나 일기 쓰기를 권유합니다. 작가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해요. 언젠가 제주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꼭 만들고 싶고, 제주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고봉황 작가는 누구?]KBS 1 드라마 ‘당신만이 내사랑’ 집필 큰 인기

고봉황 작가는 제주시 출신으로 일도초등학교와 동여자중학교, 중앙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독점 여성 정보 구성작가로 방송작가에 입문, 생방송 전국은 지금(1993~94), 체험 삶의 현장(1994~95), 생방송 행복찾기(1996), 이것이 인생이다(1997~98), 다큐멘터리 대한민국(1999) 등을 거쳤다. 2002년 일요아침드라마 '결혼이야기'로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드라마시티 '보리밭'(2003), 아침일일연속극 '아름다운 유혹'(2004), 미니시리즈 '열여덟 스물아홉'(2005), 아침일일연속극 '착한 여자 백일홍'(2007~2008), 미니시리즈 '매리는 외박중'(2010), 아침드라마 '내 인생의 단비'(2012)를 집필했다. 2010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비바리'를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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