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영화 '암살'과 현실 사이

[한라칼럼]영화 '암살'과 현실 사이
  • 입력 : 2015. 08.04(화)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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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을 봤다. 1933년 상하이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전개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영화로 하정우, 전지현, 이정재, 조진웅, 오달수, 조승우, 김해숙 등 호화 출연진에 '타짜'와 '도둑들'을 통해 명성을 얻은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었다.

과연 소문대로 볼 만한 영화였다.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도 멋있었고, 액션 장면이나 시대를 재현한 세트들도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묵직한 메시지도 돋보였다. 해방 70주년에 맞춰 일제의 강점과 그 극복 과정에서 드러나는 친일과 투쟁과 배신의 문제를 재조명한다는 점이 이 영화가 적잖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주된 요인이라고 본다.

특히 이 영화는 191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의 과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상당한 현재성을 지닌다는 면이 강점이다.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70년 전의 민족적 과제는 지금도 상당 부분 실현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 영화에서 독립투쟁을 벌이거나 그들과 뜻을 함께 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 안옥윤(전지현 분), 속사포(조진웅 분), 김원봉(조승우 분) 등도 주목할 인물이지만, 친일파인 강인국(이경영 분)과 염석진(이정재 분)을 더욱 의미 있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인국은 나라 팔아먹는 데 일조하고, 입신과 야망을 위해 가족마저 이용하는 친일파다. 아내를 죽이는가 하면, 딸까지 조선 주둔군 총사령관에게 팔아먹으려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딸의 목숨을 앗아가는 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뼛속까지 친일한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다 나라를 위한 일이었어. 멍청한 조선놈들 먹여살려야 되니까"라고 변명한다.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던 춘원 이광수의 발언이 연상되었다.

강석진보다 더 주목할 인물은 염석진이다.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인 염석진은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사건을 주도한 독립투사였다가 살기 위해 변절한 인물이다. 그는 해방 후 경찰 요직으로 근무하던 중 반민특위 재판정에 서게 된다. 결정적인 증언자를 암살함으로써 위기를 넘긴 그는 총상 흔적이 있는 상체를 보여주며 자신이 독립투사였음을 당당히 역설한다.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그였지만 곧 안옥윤 일행에 의해 처단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는 자신의 변절에 대해 "몰랐으니깐… 해방될지 몰랐으니깐"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던 미당 서정주의 발언과 유사해서 퍽 씁쓸했다.

영화에서 친일파 강석진과 염석진은 모두 독립투사들에 의해 처단되었다. 관객들은 그들이 처단되는 장면에서 사필귀정을 확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장치였다고 본다.

하지만 나로서는 바로 이 부분이 불만이었다. 실제 현실에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과연 얼마나 대가를 치렀던가를 생각해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물론 영화에서도 비공식 처단이긴 하다). 친일파들이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의 공직에 두루 기용된 반면 반민특위는 해체되었고, 일부 독립투사들은 빨갱이로 몰렸던 게 역사적 사실이 아니던가.

결국 친일파들이 계속 떵떵거리며 살도록 하는 결말이 더욱 현실적이었으리라는 말이다. 적어도 염석진은 살아남도록 했어야 리얼리티가 좀 더 확보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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