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실칼럼] 백제의 고토에서 '혼'을 만나다

[고경실칼럼] 백제의 고토에서 '혼'을 만나다
인문학에 길을 묻다<7>
  • 입력 : 2015. 08.12(수) 10:49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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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를 넘나드는 열기가 물로 만들어진 내 육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녹아내린 신작로 아스팔트가 자동차 바퀴에 달라붙으면서 내는 소리는 아작 아작 지~익 하는 굉음이 되어 공포스럽기까지한 순간들로 점철되기도 한다.

 이맘때쯤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고 시원한 계곡으로 아니면 바다로 더위를 피해 여름을 즐기려 대이동을 한다. 과거에는 필자도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밟혀 휴가를 간다기보다는 집에서 시원한 과일과 같이 전쟁사 한 편을 읽거나 고전문학 몇 권을 읽는 것을 짧은 즐거움으로 삼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보니 나의 가족들에게는 가슴에 새겨진 추억의 조각들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용기를 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이란' 고난을 겪어볼까 하고 생각한 끝에 우리가 학창시절 소홀히 했던 백제의 흥망성쇠의 혼이 묻어있는 고토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백제 흥망성쇠의 혼이 묻어있는 고토

 인문학이란 역사와 문학, 철학이 함축됐다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분야는 서로 통섭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백제를 배운다는 것은 백제의 정치·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돌이켜보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 충청권에 있는 부여군이나 공주시에서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문화의 파편들에 대한 긍지를 심어나가는 일로 온 동네가 현수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제 대학졸업을 앞둔 아들과 이미 회사원이 되어 부지런히 살고 있는 딸을 대동하고 이 지역을 걷고 있는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처럼 생경하게 다가오는 신선감도 더하고 있다. 화려한 리조트도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있고 매일같이 우리를 유혹하는 세계의 경이로운 모습들이 있지만 치열하게 종족과 문화를 번식시키기 위해 창조적 삶을 문화적 혼으로 이어지게 하려했던 백제시대 사람들이 소근 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이 순간 역시 새로운 지혜의 눈을 뜨게 만드는 계기로 다가오기에 그러하다.

 아! 아! '궁남지' 연못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연꽃들이 1400년 전 청춘 남녀들의 애틋한 사랑을 머금은 듯 장맛비속에 고혹적이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로만 전해져오는 아름다움에 심미적 손길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주에 의해 시작되었고 660년 의자왕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춰버린 나라다. 그리고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새로운 역사가 써내려졌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그 지역 속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공동체의 형태를 통해 오늘날까지 과거의 역사적 혼을 간직한 사람들의 삶의 공간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백제인들의 세련된 문화·예술적 감각 우수하고 또 우수

 백제는 하남 위례성에서 시작했고 고구려, 신라와의 각축 속에서 웅진(공주) 사비(부여)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흥망성쇠를 겪었던 나라이다. 그러나 백제 인들의 세련된 문화·예술적 감각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수하고 또 우수했다. '능산리 고분'속으로 들어가니 일본사람들에게 도굴당하지 않았던 무령왕능이 있었다.

 신라 왕릉에서도 고구려 왕릉에서도 전부 빼앗겨버린 우리 조상들이 아름다운 문화 원류의 이야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당시 모든 종교들의 상징적 징표를 한데 엮어내는 노력과 뛰어난 건축물들의 섬세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음이다. 가락지, 귀걸이, 신발, 향로, 허리띠 등 1800여 유물들은 현대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손색이 없는 것 같았다.

 부여에서 만났던 '정림사지 5층석탑'은 돌을 다듬는 기술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5층석탑 추녀의 휘감은 곡선의 미는 백제인의 혼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들 고분 속에서 죽음과 삶을 영속화하려는 사연이 담겨있기도 했다.

 계백장군과 오천 결사대의 나라를 위한 충정이 황산벌에서 바람의 소리가 되어 '웅웅웅'거리며 여행객의 소름을 돋게 하고 있다. 삼천궁녀(백제의 여인)들이 백마강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꽃잎처럼 보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있는 '낙화암'과 '백마강'은 그 진한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백마강은 오늘도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백화정'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나당연합군이 궁정으로 들어와 아름다운 궁녀들이며 패배한 나라 백성들을 노리개처럼 마음대로 취급했던 모습들이 연기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패망한 나라에 아름다운 전설이..

 오죽하면 패망한 나라에서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을까. 그들은 왜 패망했을까. 여기서 시가 있고 문학이 있고 철학이 탄생하는 원류임을 여실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부소산성 낙화암일대 우거진 적송을 보면서 필자에게 익숙한 소나무재선충의 걱정도 있었지만 아직은 건강함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기도 했다.

 '부여 국립박물관', '공주국립박물관'에 들어서면 엄마들이 자녀들 손을 잡고 백제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해주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며 다 큰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나는... 하면서 계면쩍은 미소로 스스로에게 얼버무리곤 하고 있다. 그래도 이미 천사백년이 흐른 백제의 혼과 이야기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는 긍지가 나의 가슴을 행복하게 하는 순간이다. 점심 도 잊어버리고 '공주 산성'에 오르니 또다시 구슬땀을 흘리면서 돌담을 나르며 성벽을 구축하느라 쓰러져갔던 피범벅이 된 백성의 모습들이 고혼이 되어 내 눈앞을 아른거렸다. 이틀 만에 촘촘히 공부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문화 해설자에게 좀 더 자세히 들어보려고 가까이 다가섰다가 다른 일행에 누가된다면서 생뚱맞게 대면하는 씁쓸함도 겪었다. 여기서도 나만, 우리만하는 병폐가 있음을 체험하는 아쉬움이었다. 제주도 문화 해설자들은 그러지 않고 있을 것이란 믿음을 되새겨보면서 말이다.

 견휜이 세웠다 신기루처럼 사라져간 후백제의 도읍지 '전주'와 '완주'를 거치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하루 밤을 지새우고는 우리국토의 남단 '땅끝마을'에 이르렀다.

 서늘한 농가 민박집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지새우고 끝은 시작이며 희망이라는 두륜산 정상에서 명언을 집어 삼키고는 이순신장군과 백성들의 애잔한 삶이 녹아있는 전적지를 뒤로하고 미황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서있는데 인심 좋은 주지스님의 대접에 점심공양을 하고는 시원한 달마산 중턱 전경과 한나절을 함께 했다.

 다시 뜨거운 정치금융의 중심인 여의도로 돌아왔다. 아~ 뜨겁다. 이 숨이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오늘도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주말 최종회로 가는 '징비록'에서 서애 유성룡 선생의 '산하개조' 건의는 받아들여졌든가. 문득 드라마 속에서 명량해전을 끝으로 숨을 거두는 이순신장군과 유성룡이 충정어린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다.

 백제의 충신들이 그랬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충신들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에도 고뇌에 찬 나라의 충신들이 그러고 있기에 그래도 이 나라는 이렇게 반쪽이라도 이어지고 있다.

현존하는 문화의 가치를 다시금 곱씹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땅의 사람들 중에서도 진정 자신의 사욕보다 백성과 공동체를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이 나라는 이 역사는 그렇게 지속가능함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 속에 담겨있는 혼은 그래서 가정이나 공동체나 나라나 지구촌에서도 위대한 역사적 산물이 아닌가 싶다. 다 큰 청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 정이나 느끼는지 모르는 시간이다. 우리 사람들은 자연의 한 조각일수 있다. 그래도 위대한 것은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비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 시대에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문화가치의 소중함을 다시금 곱씹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에 머무른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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