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 꿩독새기와 오고생이

[목요담론] 꿩독새기와 오고생이
  • 입력 : 2015. 09.03(목)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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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관찰하거나 사진을 찍다보면,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고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유혹이 커지는 만큼 새들은 어떨까. 특히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는 동안에는 애가 탈 것이다.

꿩알은 제주어로 '꿩독새기'라 부른다. 꿩은 일부다처로, 둥지는 땅 위에 오목하게 파서 마른 풀을 깔고 알을 낳는다. 보통 4월~5월에 10여개의 알을 낳고 보리와 유채 수확기인 5월~6월에 부화한다. 전적으로 암컷이 알을 품으며,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어미를 따라 나선다.

꿩은 특이하게도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사람이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고 있다가, 불과 1m 정도 가까이 오면 갑자기 날아오른다. 이때 심장이 덜컹한다. 봄철 고사리를 꺾을 때나 오름을 탐방하거나 감귤 밭에 농약을 칠 때 뒤로 자빠질 정도이다. 제주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경험한 했으리라 본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길 바라며, 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갓 태어났을 때 부정탈까봐 금줄을 매는 것처럼, 꿩도 자기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꿩은 알이 사람에게 노출되면, 다시 품지 않으려 한다. 알에서 새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알 품기를 포기하는 게 더 나을거라 판단해서일까. 다시 품으러 왔다가 어미 목숨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꿩 먹고 알 먹기'라는 속담을 만들었을까.

예로부터 제주의 산간에는 꿩사냥을 즐길 정도로 꿩이 워낙 많았으며, 꿩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냥꾼을'꿩바치'라 했다. 솜씨있는 아이들은 꿩코를 놓아 꿩을 잡았으며, 꿩알도 맛이 일품이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꿩알을 주우러 오름을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꿩고기에는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제주 사람들에게는 꿩요리가 제일가는 토속 음식이며, 특히 꿩메밀 칼국수는 알아주는 웰빙 음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꿩빙애기(꺼벙이)를 귀한 약으로 쓰기도 했으며, 특히 꿩엿은 성장기의 아이들이나 기력이 떨어진 어르신에게는 보약과도 같다.

꿩은 제주 사람들에게 귀한 음식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준 자원이지만, 꿩은 여전히 불안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꿩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꿩들도 우리처럼 행복해질수 있도록 그들의 보금자리를 오고생이(고스란히) 놔두면 어떨까. 우연히 보게 된 꿩독새기도 마찬가지다. 설령 어미가 오지 않더라도, 다른 천적에 의해 포식당할 수도 있겠지만, 꿩닥새기 봉갔다(주었다)고 자랑하는 촐람생이 보다는 낫지 않을까.

오름과 곶자왈 그리고 뱅듸의 원형이 사라지면서, 꿩들이 맘껏 놀던 터가 점점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다. 먹잇감 때문에 서로 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로드킬로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전통적인 꿩사냥도 사라지면서, 꿩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못하다. 제주어도 그렇다.

최근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문화체험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언어의 다양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다분하다. 제주어의 실용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다보니, 제주어를 오고생이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불안해져 가고 있다. 제주어와 함께 하는 체험 활동을 하면서, 제주어의 참뜻과 제주어와 관련된 생물자원의 습성과 선인들의 지혜로움을 함께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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