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묵살과 협치'의 피 흘리지 않는 전쟁

[하루를 시작하며] '묵살과 협치'의 피 흘리지 않는 전쟁
  • 입력 : 2015. 09.30(수)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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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에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의 얘기가 있다. 카산드라를 사랑한 신 아폴론은 그녀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선물했는데도 그의 사랑이 좌절되자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게 하여 그 예언의 효력을 없애버렸다. 트로이는 그녀의 예언대로 멸망했다. 성이 함락되는 아비규환 속에서 패배를 예언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호소했던 카산드라를, 그 예언이 현실이 되었을 때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다. 해서 유럽에서는 현 상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의 필요성을 호소하지만 정치가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을 일컬어 '카산드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최근 들어 불거진 문제 17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열린 제주도와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간의 제2차 정책간담회 자리에서의 서귀포시 지역에 추진되고 있는 헬스케어타운 내 외국 영리병원과 예래휴양형주거단지를 주제로 한 질문과 답변, 토론에서도 카산드라의 예언은 여지없이 묵살됐다.

필자의 부족한 눈으로 보기에도 원도정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열렬히 주장하는 '본질적인 형태를 위한 개혁-환경 생태계 문제와 현주민 생계이익과 기득 우선의 원칙 등'보다도 제주도가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위한 밑그림으로 '현 상황에서도 실현 가능한 형태의 개혁-제주도 전체 이익의 원칙(서민이나 현주민 기득권은 배제 당하기 쉬운, 개발능력이 가능한 일부 특정업체 우선)과 타 도시와 개발권 경쟁 유치 우선'의 추구를 더 중요시하는 듯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민중은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물론 원도정의 처음 '협치' 의도는 훌륭하고 선의로 가득 찬 것이었다.

'리더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처럼 말해보자. 리더가 된 후에 두 부류로 나뉘는 법이다. 첫 번째는 과거의 잘못을 냉철하게 인정하고 더욱 확고해진 지위와 권력을 활용하여 궤도수정을 단행하는 사람. 두 번째는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는 지난 시절 정책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믿고 그동안의 궤도를 더욱 더 완고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우리는 리더가 첫 번째의 부류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는 자기 개인의 안위나 출세는 잊고 지도자에게 간언할 만한 협력자가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 궤도 수정이 가능한 사람은 이미 일류 리더이지만 그런 인물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 누군가에게 지적당하고 나서야 궤도수정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궤도 수정 안건에 대한 원도정의 '묵살'의 이유가 JDC와의 관계 문제 때문이라면 슬쩍 양다리를 걸쳐도 좋을 일이다. 개인의 양다리와 도지사의 양다리는 엄연히 다르다. 도민의 원하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달라야만 한다. '제주도정을 대표하는 자라면 양다리를 걸치는 것쯤이야 별 일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로마인은 자신들의 제국을 '가족'이라 불렀으나 영국인은 식민지를 포함한 제국 전체를 어디까지나 '지배대상이며 착취대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외부세력의 물결이 거칠게 몰려오는 지금 여기에 대응하는 제주의 토착 서민들을 원도정은 어떤 관점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지 궁금하다. 이제 그는 어릴 적 제주도의 변두리 중문에 살던 까까머리 촌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가족'이 대권의 야망을 이루는데 희생양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물론 현명한 민주시민사회에서는 위대한 리더도 필요 없겠지만 모두 다 제주도의 주인으로서 역량을 키우고 문제를 통찰할 때 그 해결책이 마련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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