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직함의 가치에 대하여

[하루를 시작하며] 직함의 가치에 대하여
  • 입력 : 2015. 10.14(수) 00:00
  • 편집부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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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뜨거움을 토해내던 한여름 태양이 눅져간다. 청춘의 거친 함성처럼 강렬하던 8월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심해(深海)를 퍼 올린 듯 창공에 걸려있는 코발트빛 가을. 서귀포아낙이 가슴설레는 청귤밭의 무게에 가을이 휘늘어진다. 연초에 받아두었던 삼백 예순 다섯 날, 신이 내린 선물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나에게 10월은 언제나 세월의 빠름에 무게를 더한다. 한해를 마무리할 겨울 또한 멀지 않았으리라.

어느새 일 년이다. 작년 이맘때 쯤 나는 본의 아니게 기업의 대표 직함을 얻게 되었다. 이십 년 전 남편이 설립한 엔지니어링회사, 나는 그곳에서 10여년을 성실히 일했다. IMF를 치르고 전문지식도 없이 마흔의 여자가 들어선 낯선 공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그랬을까. 모든 것이 생소했고 어려웠다. 그러나 모르면 알 때까지 안되면 될 때까지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편의 회사이기에 더 조심스럽고 눈치가 보였던 지난날들,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매달리던 일련의 기억들에 공연히 콧등이 시큰해왔다.

사실 나는 커리어우먼을 동경했었다. 일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대학을 마치고도 직장 한번 다니지 못하고 주부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단아한 정장에 뾰족한 하이힐, 브라운톤 서류가방을 든 채 아침에 출근한다는 것, 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커다란 현판이 걸린 번듯한 회사, 가지런히 서류가 꽂혀있는 나만의 책상, 그리고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는 깔끔한 디자인의 명함, 그것은 주부의 길로 들어선 스물다섯의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로망이었다. 어쩌면 아기엄마로 살면서 변변한 직함이 없음에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하고도 전업주부로 눌러앉아야만 했던 불편한 현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직함이 내가 가진 타이틀의 총체라는 서글픔, 가슴속에 뜨거운 불꽃이 일던 청년기의 나는 빈한한 삶의 고통보다 빈약해져가는 자아에 더 괴로워했었다.

살아오는 동안 여러 종류의 직함을 얻었다. 어디에서든 나를 소개하며 당당히 내밀던 명함 속 직함들에 새삼 부끄러움이 앞선다. 솔직히 그것은 직함이라기보다 사회적 역할에 갈증을 느끼며 주워 모았던 자질구레한 동네감투였다. 그러나 빈약한 그 직함 뒤에는 내가 살아온 매 순간의 진정성과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땀의 흔적들이 숨어있다. 나를 대변해줄 수 있는 직함이 곧 자신의 본질이라 여겼던 젊은 혈기에 기인하여 설사 빈틈이 많은 생각과 미진하기 그지없는 행위들이 빈약한 자아를 위장하기 위한 과대포장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손익과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전부를 바치는 열정적 삶을 살아왔고 그 미련함 덕분으로 주부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인사들과 만나며 활동할 수 있었다.

내가 경영일선에 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짓궂은 몇몇은 남편자리를 꿰찼다며 대단하다 놀려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얻은 직함은 축하받을 일도 대단할 만큼 폼나는 자리도 아니었다.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총성없는 전쟁터, 이윤창출의 경제활동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공익적 원초지, 남다른 각오로 입사했던 오래전 그때보다 더 두렵고 더 긴장된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어느새 기업대표라는 직함에 모든 것을 투사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직함이란 얻었을 때의 영광보다 그 직함을 충실히 마치고 내려놓을 때의 기쁨이 그 진정한 가치이려니.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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