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4)오메기술 기능보유자 김을정

[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4)오메기술 기능보유자 김을정
제주 전통주 오메기술 명맥 잇는 일 한평생 바쳐
  • 입력 : 2016. 02.18(목) 00:00
  • 최태경 기자 tkchoi@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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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정 보유자는 성읍민속마을에서 제주 옛 오메기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강경민기자

1990년 5월 30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
제주 옛 오메기술 맥 이어 받아… 역사의 산 증인

제주 전통주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현존하는 한국의 민속주 중 구멍떡으로 빚은 유일한 술로 그 보존 가치가 높다.

이 중 오메기술은 좁쌀막걸리의 원조로, 지난 1990년 5월 30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성읍민속마을에서 옛 오메기술 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을정(92) 보유자는 제주 오메기술의 역사의 산 증인이다.

외할머니가 손자를 대하듯 기자를 맞이한 그는 오메기술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정정함에 제주 전통주에 대한 자부심으로 자연스레 장인의 기품을 풍겼다.

제주 오메기술은 좁쌀과 누룩으로 발효시킨 양조 곡주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토양 자체가 벼농사에 부적절한 곳이었다. 이 때문에 제주사람들의 주요 식량은 조와 보리였다. 이 중 조는 토양이 비옥한 곳이면 어디에서든 농사를 지었고, 제주사람들은 탁주와 청주도 좁쌀로 만들었다. 특히 차좁쌀로 만든 오메기떡은 최근에도 제주 특산식품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예전 제주사람들도 별미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이 오메기떡으로 만든 막걸리가 바로 오메기술인 것이다.

"옛날에는 쌀이 귀해서 술을 만들 수 없었지. 사람들이 가난하고 술 만드는 공장도 없고 해서 집에서 직접 재배한 차좁쌀로 술을 만들어 먹게 된 거지."

김을정 보유자가 오메기술을 접하게 된 것은 바로 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집에서 만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만들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김을정 보유자가 오메기술을 접하게 된 것은 바로 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집에서 만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만들기도 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남원면장이었지. 손님들 오면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았고, 그래서 집에서 어머니가 만든 오메기술을 대접하곤 했어. 어릴때부터 어머니랑 함께 만들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술만드는 법을 체득하게 된 거지."

스무살이 되던 해 시집을 가며 친정을 떠나게 된 김을정 보유자는, 교사인 남편을 따라 섬을 떠나 뭍으로 나가게 된다. 관사만 10곳을 옮겨 다녔다. 해방이후 때마침 제주로 발령받은 남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집에서 소일거리로 오메기술을 만들게 된다.

"집에서 소일거리로 오메기술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지. 그런데 이게 불법이었어. 밀주라고 고발을 당해서 100만원을 벌금으로 내기도 했지."

한일합방 이전까지 제주에선 가정마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가 주류에 대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주세법을 제정해 가정에서 술빚는 것을 불법화하고 단속을 하면서 가정에선 밀주를 하게 된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일제의 주세법이 그대로 통용되고, 양곡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양곡관리법을 제정해 밀주를 엄하게 단속했는데, 이같은 정책 탓에 제주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성읍민속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 그는 문화재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다지게된 성읍민속마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남편 직장 전근으로 표선으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 바로 지금 사는 곳이었지. 성읍민속마을이 관광지로 활성화되는 초창기였는데, 음식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대접할 술이 필요했던 거야. 오메기술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10명이 선발됐었는데, 엄격하게 심사해서 나 혼자 기능보유자로 선정됐어."

단순히 제조기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집안 등등 문화재로서의 엄격한 심사기준이 적용됐다고 한다.

지난 1985년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무형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163호로 '전통민속주'를 펴내고 그 중 제주 오메기술이 지정 문화재로 됐고, 1990년 5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전통은 이어진다=현재 제주 오메기술은 딸인 강경순씨가 전수자가 돼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집안에 경사도 있었다. 전수조교로 활동하는 강경순씨가 정부가 지정하는 '식품명인'에 지정된 것이다.

식품명인이 되려면 식품 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하거나 전통식품 제조·가공·조리 방법을 원형대로 보존하는 등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강 명인은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자랐다.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타고 나는 것 같아. 우리 아들도 어릴때부터 그렇게 글을 잘 쓰더니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 다 타고 나는 것 같아. 나도 어릴 적부터 보고 배워서 오메기술을 담그고 했지만,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손맛이 있었기에 이리 된 것 아니겠나 생각하지." 현재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인 고소리술에 대해서도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김을정 보유자는 마지막으로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술만드는 것 쉽지 않지. 일도 고되고, 돈도 많이 못 버는데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하겠어. 다행히 우리 딸이 기술을 전수받아 명맥을 이어가게 됐어. 한시름 놓게 돼 다행이지. 엊그제 서울에서 술을 사러 왔는데, 없어서 못 줬어. 우리 술 향기가 오래도록 이어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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