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한라칼럼]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 입력 : 2016. 03.08(화)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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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단 가고시마현의 야쿠시마는 삼나무숲으로 잘 알려진 명소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원시 숲을 자랑한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작년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라일보 취재진은 야쿠시마를 찾았다. 태평양과 동중국해의 경계에 있어 열대와 온대가 교차하는 이곳에는 해발 1935m인 최고봉 미야노우라산과 고산식물, 상록수림이 우거져 여러모로 한라산을 떠올리게 한다.

야쿠시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영국 태생의 식물 채집가 겸 식물분류학작인 어네스트 윌슨 때문이다. 1914년 일본에 첫발을 내디딘 야쿠시마에는 윌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밑동만 남은 수령 3000여년의 삼나무 '윌슨 그루터기'가 대표적이다. 야쿠시마의 숲을 헤매다 우연히 동굴을 발견하고 비를 피했는데, 그것은 바로 거대한 삼나무 그루터기였다. 베어진 나무는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령에 의해 사찰 건축 재료로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야쿠시마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이 삼나무를 '윌슨 그루터기'라 명명하고 부두 가까운 곳에는 윌슨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윌슨 그루터기 모형을 설치하고 비석까지 세웠다. 비석에는 윌슨 그루터기가 야쿠시마의 상징이 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윌슨은 1917년에는 제주를 찾았다. 그는 이때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을 기준표본으로 1920년 한국특산인 신종으로 발표했다. 한라산 구상나무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것이다.

윌슨보다 앞서 제주의 식물을 서양에 처음 알린 것은 프랑스인 사제 타케 신부다. 그는 1902년 4월 한논(서귀포시 호근동 하논) 본당의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후 1915년까지 제주 식물 연구에 매우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1908년 왕벚나무 자생지를 처음 발견한 것도 그다. 관음사 일대에서 채집한 표본(표본번호 4638번)을 기준으로 독일의 케네(Koehne) 박사가 왕벚나무로 감정함으로써 이 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설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표본은 자생 왕벚나무의 표본으로서는 최초이다.

타케가 채집한 것들 중에는 제주 특산식물이 많이 포함돼 있으며 그를 기념해서 붙여진 학명도 13종이나 된다. 일본으로부터 온주밀감을 들여와 서귀포지역이 감귤주산지로 성장한 시초 역시 타케 신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가 100여년 전인 1911년의 일이다. 근대적 의미의 제주감귤 재배의 시작이다. 당시 타케가 심은 온주밀감이 옛 서홍성당 자리에 1그루 남아 있다.

제주섬의 지질학적인 재발견과 서구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초 독일 베를린 출신의 지질학자이자 언론인인 지그프리트 겐테의 한국 여행기를 통해서였다. 그는 1901년 제주섬에 왔던, 당시 독일 퀼른신문의 아시아 특파원이자 지리학 박사였다. 그 이전에도 많은 서구인들이 표류하거나 제주섬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겐테가 남긴 제주에 대한 기록은 한라산을 직접 등정하고 높이를 측정, 1950m라는 사실을 밝힌 데서 특히 주목을 받는다. 그는 여행기를 자신이 재직 중이던 퀼른신문에 1년여간 연재, 서양인들에게 제주의 존재를 알렸다.

세계가 주목하는 제주. 일찍이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제주를 주목했으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이 세상에 비로소 알려지기까지 많은 선각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자취와 업적은 점점 잊혀지고 묻혀져 가고 있다.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인가.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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