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7)제주 산악인 1세대 안흥찬씨

[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7)제주 산악인 1세대 안흥찬씨
"등반로 없어 기어서 올랐던 한라산… 겸손을 배웠다"
  • 입력 : 2016. 04.21(목) 00:00
  • 강경태 기자 ktk280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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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자신의 호를 딴 '소산 산악관'을 개관한 안흥찬 선생이 직접 그린 한라산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50여년 그의 산악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악관에는 한라산 그림을 비롯 등산기사 스크랩, 각종 등산 장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강경민기자

농업중학교 시절 첫 등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국내 최초 민간 산악구조대 창립 멤버로 활동
철쭉제·만설제 등 기획 한라산 가치 적극 알려
'어머니 같은 한라산' 화폭에 담아 전시도 열어

태고의 명산 한라산. 많은 이들이 한라산을 올랐고 그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지금이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불과 60년전까지만 해도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와 제주4·3은 젊은이들에게 한라산을 더욱 오르내리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

탐방로도, 등산장비도 없던 그 시절 신비로움에 매료돼 한라산을 올랐던 산악인 1세대 안흥찬(86)씨를 만났다.

"농업중학교를 다니던 일제강점기 말미 군사훈련 비슷하게 한라산 등반이 있었죠. 군부대에 숯을 보급하는 일을 하며 겨울 한라산을 종종 올랐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안흥찬씨와 한라산의 첫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다.

60년대 변변한 장비 없이 한라산을 오르던 시절의 안흥찬 선생(왼쪽)과 지금은 고인이 된 산악인 김종철 선생.

해방 직후 제주4·3으로 인해 금족령이 내려져 입산을 하지 못했고 곧 한국전쟁이 발발해 입대를 했지만 마음 한 켠엔 언제나 신비로운 한라산을 품고 있었다. 이후 안씨는 4년 4개월간 군생활 후 꿈에 그리던 한라산을 올랐다. 그리고 산악인 김종철씨와 함께 매일 오르내렸다. 제대로 된 장비와 등반로도 없었지만 이들에게 한라산은 '행복' 그 자체였다.

"등반로가 없어 한라산을 기어서 오른적도 있었죠. 등산장비라고 해봐야 군대 제대후 가지고 온 군화와 반합, 판초우의 정도였습니다. 식량도 호박이나 고구마였는데 이것들을 넣다보니 배낭 무게가 40㎏ 가까이 됐어요."

하지만 산은 가혹한 곳이었다. 1961년 산을 오르던 서울대생 이경재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안씨와 동료들은 며칠 동안 이씨를 구조하기 위해 곳곳을 수색했지만 너무 늦은 후였다. 이를 계기로 안씨와 동료 산악인들은 앞으로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생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경재씨 조난사고 이후 제주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산악구조대가 창립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김현우 청소년과장의 후원 아래 김종철, 안흥찬, 고영일, 김현우, 현임종, 김규영, 강태석, 김형희 등이 구조대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구조신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머리맡에 배낭을 두고 잤어요. 한순간이라도 빨리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다시피 한라산을 올랐죠."

이들은 정비되지 않은 등산로 곳곳에 조난사고 방지를 위한 표시기를 달았고 위험한 곳에는 계단과 안전줄을 설치했다. 이들이 무보수로 설치한 장비들은 이후 숱한 생명을 구했다.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한라산을 지킨 셈이다.

제주 산악인 1세대 안흥찬 선생의 사진첩에 담긴 오래된 흑백사진들. 등산로도, 장비도 갖춰지지 않던 시절에 한라산에 대한 지극한 사랑 하나로 산을 오르고 인명구조 활동 등을 펼쳤던 안흥찬 선생 등 제주 산악인들의 모습은 또다른 한라산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한번은 폭설 속에 이화여대 산악부원들이 고립됐는데 무사히 구조한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들 중 일부는 제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자 백발의 할머니가 돼 전시회를 찾았더라구요."

안씨는 1964년 창립한 제주산악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제주산악계가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1967년에는 활짝 핀 한라산 철쭉을 소재로 '철쭉제'와 눈 내린 한라산의 무운을 비는 '만설제'를 기획해 한라산의 가치를 전국에 알렸다. 또 제주산악회는 1968년 열린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국토삼천리 종주행사에 주축이 돼 참가하기도 했다. 70년대에 들어 제주에 10여개가 넘는 산악회가 생기자 안씨는 제주산악연맹을 이끌었다. 안씨는 말 그대로 산악인으로서 제주산악사의 큰 줄기를 그렸다.

안씨는 틈틈이 한라산의 모습을 화폭에도 담았다. 산을 오르내리며 산의 모습을 스케치한 뒤 집에 돌아와 캔버스에 옮겼다. 그렇게 한 점 두 점 그리다보니 어느새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 만큼 인정받는 작가가 돼 있었다. 안씨는 한국서화작가협회전 한국화부문 최우수상과 아시아 평화통일미술대전 특선 등 크고 작은 수상경력도 쌓았다.

안씨는 2008년 자신이 그려온 그림과 오래된 소품들을 모아 자신의 호 '소산(素山)'을 딴 작은 산악 박물관을 열었다. 50여년간 안씨의 발자취를 정성스럽게 모아둔 공간이다.

소산 산악관에는 자신이 직접 그린 한라산 그림과 등산기사 스크랩, 등산장비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고인이 된 고상돈씨의 친필이 담긴 에베레스트 등정 기념사진과 그가 안씨에게 따다 준 에델바이스 꽃잎도 함께 걸려있다.

"산이 좋아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라산이 어머니처럼 느껴졌죠. 저에게 한라산은 언제나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후배 산악인과 등산을 하는 이들이 산을 오르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인격소양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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