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제주의 리더들을 위한 독백

[하루를 시작하며]제주의 리더들을 위한 독백
  • 입력 : 2017. 10.11(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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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연휴는 참으로 시시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올 듯 나올 듯 하다가 말았다. 이는 순전히 한국사회의 자존심 문제고 도서관의 문제다. 리더(leader)는 리드(read)가 만든다. 로마의 위대한 무장 케사르까지 무릎 꿇게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높은 콧대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만들어준 것이라 하는데. 필요할 때마다 달려가 보면 번번이 닫혀 있는 도서관은 독자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버린다. 이럴 때는 북한이 핵폭탄을 던진다고 해도 시큰둥하다. 이번 추석연휴 골든타임도 휴관이라 삶에 대한 열정이 썰렁했다. 마치 주어진 의무만 있고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노역자처럼 서글펐다.

러시아의 어느 도서관 사람들은 2차 대전 중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900일간이나 봉쇄, 식량과 연료 공급을 차단하고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67만여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포탄에 맞아 죽는 상황에서도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군대와 병원을 위해 이동도서관까지 운영했다는, 그래서 당시 직원 절반가량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원하는 책을 못 보면 소갈증에 걸린 사람처럼 발광하는 필자는 '휴관 중' 팻말을 달고 닫힌 문 앞에서 도무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선 듯 망연자실하고 만다.

문득 스치는 사람이 있다. "제주에 풍요롭게 먹고 살 일거리를 제공하는 기업가들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가난한 제주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필자가 속한 고전강독 그룹의 일원인 모 병원 원장이 뒤풀이 담화 중에 필자에게 던진 말이다. 일자리 창출을 앞세워 권력과 결탁해 엄청난 잉여를 갈취해 가는 요즘 자본가들을 저토록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워 흡사 희귀동물 대하듯 자신을 쳐다보는 필자의 시선을 느꼈는지 "괜찮아. 제주도에 세계적인 도서관을 만들면 돼."라고 독백처럼 내뱉는다. 과연 책 읽는 사람다운 말이다. 기업의 물질적 이윤을 사회의 정신적 이윤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유흥 위주로 흐르는 제주사회가 싫어 시들하던 책벌레들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뛴다. 진료실 한켠에 웬만한 도서관보다 더 많은 장서를 마련해 두고 읽기를 즐기는 독서광이란 소문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고전강독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토요일 오후 자신의 집무실에 간이 책상을 들여놓고 선뜻 내주겠나 싶다. 때마침 휴대전화로 문자 하나가 떴다. '한송 선생님 논어강의가 11월 18일로 잡혔으니 개인 일정 잡으실 때 참고 바랍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한학자께서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철 안든 후학들을 가르치시느라 알코올 냄새가 솔솔 풍기는 비좁은 병원 진료 대기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내려오신다는 소식이다. 콧대가 팍 선다. 제주가 다시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번엔 밤새도록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연중무휴 24시간 개방', '공휴일 24시간 개방' 팻말이 붙은 도서관이 제주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키운다. 우리 아이들에게 피시게임방은 너무 가깝고 도서관은 너무 멀다. 이건 아주 큰 문제다. 이 사회의 리더들은 밤과 낮 공휴일이 없다. 어떤 경쟁사회에서든 혹은 인류 스스로 뛰어드는 자신과의 경쟁에서든 뜨겁게 살아남기 위해 보다 더 큰 도서관이 우리 가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세상은 더 리더(reader)가 리드(lead)한다. 이건 상식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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