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3) 제주 연극인들이 일군 소극장 역사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3) 제주 연극인들이 일군 소극장 역사
특급호텔 카페·도심 예식장이 창단 무대였다
  • 입력 : 2017. 10.17(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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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제주연극 '개화기'였지만 소극장 시설 빈약
일반 전구 조명기 쓰던 YMCA소극장 차츰 장비 갖춰
80년 10월 개관 수눌음극장 제주의 마당굿 운동 증언


"당시 칼호텔 2층에 있던 카페의 커피값이 200원이었습니다. 커피를 팔아준다는 조건으로 그곳을 공연장으로 썼지요. 그래서 입장료로 200원을 매겼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호텔쪽에서 우리에게 원가를 빼고 관객 1인당 얼마씩을떼어내 돌려주더군요. 그랬더니 전부 합쳐 5000원이 좀 안되는 금액이 되었는데 그 돈으로 회원들과 함께 라면과 소주를 사다놓고 뒤풀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극단 정낭의 강한근 대표. 제주YMCA 대학생 극예술연구회였던 '가람극회'(극단 가람의 전신) 지도위원을 맡았던 그는 어제일처럼 그날을 떠올렸다. 1975년 6월 제주칼호텔 카파룸에서 열었던 가람극회 창단공연 장면이다.

▶탁구장으로 쓰던 공간에 간이무대='제주문화예술 60년사'에서 희곡작가 장일홍은 1970년대 제주 연극을 '개화기'로 명명해놓았다. 동호인모임이었던 제주도연극협회가 1975년 한국연극협회에 정식 등록하며 연극협회제주도지부로 새롭게 출범한다. 이를 계기로 그해 연말 극단 가교의 뮤지컬 초청 공연을 갖는 등 이른바 중앙 무대와 연결 고리를 늘려간다. 이 해 가람극회가 시도한 유료 공연, 한라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전도 소인극 경연대회 등으로 지역 연극 발전의 전환점을 이뤘다.

1)극단 정낭 극장이 1980년 9월에 동원예식장에서 열었던 두번째 정기공연 '진혼곡'. 2)극단 정낭 극장이 1980년 3월 동원예식장 창단 공연 이후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극단 정낭 제공. 3-4) 제주YMCA 소극장에서 열린 가람극회 공연 장면. 하나 둘 조명 장비를 늘리며 소극장의 면모를 갖춰간 곳이다. 사진=극단 가람 제공

그같은 성과를 이으며 1978년 3월 극단 이어도가 '돼지들의 산책'을 무대에 올리며 창단했고 1980년 2월 극단 정낭극장이 생겨났다. 연극에 대한 열정을 풀어내듯 크고작은 극회와 극단의 공연이 잇따랐지만 그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은 빈약했다. 지역 연극인들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관객과 소통하며 장기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소극장이 없었다.

제주YMCA 소극장은 부족하나마 연극인들의 갈증을 달래줬다. 초반엔 탁구장으로 쓰던 공간에 간이 무대를 놓고 일반 전구를 달아서 조명기로 사용했지만 롱핀, 베이비 등 하나둘 장비를 늘려가며 공연장 면모를 갖춰갔다. 1976년부터 소극장으로 가동되는 동안 가람극회, 극단 이어도가 주로 그곳을 활용했다. 1988년 YMCA회관 신축이 이루어지면서 이 소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마땅한 소극장이 없던 그 시절 예식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 일도 있다. 정낭극장은 1~2회 정기공연을 제주은행 제주본점 맞은편에 있던 동원예식장에서 펼쳐놓았다.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무대가 보이지 않는 불편한 공간이었지만 관객들이 밀려들었다.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올린 정낭의 창단 무대는 앙코르 공연까지 가졌다.

▶낮엔 음악감상실로, 주말엔 공연장으로=1980년, 엄혹한 이 시기에 제주도에선 10월 29~31일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치러진다. '꽃피우자 전통문화, 창조하자 새 시대' 를 주제로 내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제주에서 처음 열린 전국 규모 행사였다. 지자체는 관광지 대청소를 실시하는 등 '육지' 손님 맞이 준비로 바빴다. 안덕면 덕수리 '방앗돌 굴리는 노래'가 대상을 차지하는 등 정부 주도의 행사로 제주가 떠들썩 했지만 문화 인프라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극단 이어도 창단 공연 팸플릿 표지. 사진=극단 이어도 제공.

이런 가운데 그 당시 지역 신문에서 '전용 소극장'으로 소개한 공간이 탄생한다. 1980년 10월 제주우체국 앞 동인돌집 지하에 문을 연 수눌음 소극장이다. 그해 8월 대학생과 일반인 등 20여명이 발족한 탐라민속연구회 수눌음의 명칭을 딴 공간으로 낮에는 고전음악감상실로, 주말엔 연극 등을 공연하는 소극장으로 꾸렸다.

38평 크기에 150석 가량의 객석 규모인 수눌음 소극장은 지역의 이슈를 연극에 담아온 제주지역 마당굿 운동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다. 창립 공연으로 제남신문사 제남홀에서 제주지역 땅 문제를 다룬 마당극 '땅풀이'를 풀어놨던 수눌음은 10월 30일부터 5일 동안 소극장 개관을 기념해선 제주 토착민의 시각으로 삼별초의 난을 해석한 '항파두리 놀이'를 선보인다. 하지만 사회의 현실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던 수눌음은 '당국의 묘한 주목'을 받으며 1983년 끝내 해체되고 그들이 활동했던 소극장 역시 차츰 잊혀진 이름이 된다.



제주 첫 공립 문예회관 소극장
조명 음향 비해 무대활용 취약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은 1988년 문을 열었지만 소극장 개관은 그보다 늦었다. 1990년 1월 문예회관 소극장이 조성된다.

강한근 극단 정낭 대표는 "당초엔 문예회관에 소극장을 지을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공연계에서 200~300석 규모의 소극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뒤늦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문예회관 소극장은 544㎡면적으로 현재 고정석 70석과 가변석 100석의 객석으로 구성됐다. 무대는 14.4m×4.45m 규모다. 이 공간은 제주지역에서 지자체가 건립한 첫 소극장이지만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의 민원이 많았던 공간 중 하나다. 무대 조명과 음향 시설이 여느 민간 소극장에 비해 뛰어나지만 실제로 무대와 객석 활용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고정 객석을 설치하는 등 몇 차례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연극·음악 등 문예회관 소극장 이용률은 예전 같지 않다.

연극협회제주도지회는 1992년부터 소극장 연극축제의 단골 무대로 문예회관을 썼지만 지금은 주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소극장을 이용한다. 민간 시설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도 있지만 문예회관이 소극장용 무대극에 맞지 않는 시설인 점도 영향이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펴낸 '2017제주문예연감'을 보면 지난해 열린 음악 공연 471건 중 제주건반예술학회 창단 음악회 등 17건이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진행됐다. 연극은 전체 135건 중 제주도문화진흥원 초청 극단 봄의 인형 뮤지컬 등 15건이 문예회관 소극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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