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 사이(정인수 지음)=섬과 섬 사이, 숨비소리, 지드림, 삼다도, 제주10경. 시편들을 끼리끼리 묶어놓은 소제목에서 짐작하듯 오롯이 제주를 읊은 시들로 채워졌다. 제주의 섬들을 한바퀴 돌면서 제주 섬 속의 섬을 그려냈고 제주 해녀를 소재로 썼던 작품을 다시 불러 모았다. 첫 시집에 소개했던 제주 소재 평시조와 사설시조도 골라 실었다. 영주십경을 토대로 현대인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제주10경도 담았다. 현대시조100인선으로 나왔다. 고요아침. 1만원.
▶그래, 지금은 사랑이야(한희정 지음)=30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서귀포로 돌아온 시인의 귀농 시집이다. 한창 나이에서 한발 물러서는 사람의 이야기랄까, 푸른 여름을 지나 단풍을 준비하는 가을을 노래한다. 60여편에 농사를 짓는 삶, 점점 사라지는 고향의 풍광 등을 친근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물방울 튕기면서 절로 때를 씻어주는/ 뽀드득 지나온 시간, 세척기를 돌린다'는 '우아한 중년'이 그려진다. 세번째 시조집. 도서출판각. 9000원.
▶피카소의 여인들(진진 지음)=사랑을 갈구하는 여인들이 있고 어긋나버린 사랑의 뒷모습이 있다. 타인들과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본래의 자아를 탐구하려는 과정이 드러난다. '주방에서 혹은 카페에서 때론 길가의 하늘거리는 꽃잎 속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찌개냄비 아니 나, 난 진짜 내가 그립다.'는 시의 한 구절은 관념의 낡은 옷을 버리고 날아보고 싶다는 시인의 말과 겹쳐 읽힌다. 세번째 시집. 월간문학출판부. 8000원.
▶어머니의 집(고희화 지음)='찬바람만 대문을 넘나들 것 같아/ 차마 오지 못했던 집'에 그가 왔다. '어머니의 집'을 노래하며 나이 60에 첫 시집을 묶어냈다. '삶이 힘들 때 부르는 이름'인 가족에 대한 시편들이 적지 않다. '편지', '내게도 아버지가 계셨지', '달팽이 엄마', '낮달' 등 시인은 그립고 그리운 존재지만 부재하는 그들을 써내려간다. 그래서 지금 생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말미엔 제주어로 쓴 시를 넣었다. 제주콤. 1만원.
▶꽃과 장물아비(김영순 지음)='내 가계 내력에는 말울음 배어있다'는 '갑마장길' 연작을 통해 제주라는 공간에서 전개되는 인생의 서사시를 펼친다. 산기가 긴박한 새벽 산마장 풍경에서 생명 탄생의 비의가 읽히고 갑마장길 타래난초에서 감긴 뒤 풀리지 않는 생은 없으리란 걸 배운다. 농약냄새 거름냄새 밴 농협 마크 다이어리에 적힌 아버지의 일기처럼 갑마장길 자연에 소름돋는 '말씀'들이 있다. 2013년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고요아침. 1만원.
▶허공에 투망하다(부정일 지음)=10여년간 한라산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틈틈이 써온 시를 묶었다. 환갑을 넘긴 시인의 첫 시집이다. 배배 꼬인 생각들을 늘어놓거나 아름다운 단어만 나열하는 시가 아니라 파문처럼 번져나가는 메시지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시인은 사물의 내부에 숨어있는 정감과 의미를 붙잡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우직한 발걸음으로 일상에 그물을 던진다. 한그루.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