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원에는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여럿 찾아온다. 이런 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짐작하듯 원인은 이전 세대와는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고 그에 앞서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 세대의 경우 입원할 정도의 질병 상태거나 특별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학생이 아닌 이상 괴롭고 힘들어도 학교는 무조건 가는 곳이었다. 이는 오랜 세월 우리의 생활과 관념을 지배해 온 유교 문화와 6·25 전쟁, 군사 쿠데타로 수립된 독재정권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기존 질서와 위계에 대한 긍정과 순종의 분위기가 배어 있었던 탓이 크다. 또한 이전 세대는 전 세계적으로도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고 경제적으로는 농·축·수산업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했기에 기존의 생존방식과 지식을 배우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고도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적 질서와 정보와 지식이 기반을 이루는 사회로 그 변화의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뉴스가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지만 우리 사회에서 전쟁의 상흔과 기억은 흐릿해졌고 아이들에게 전쟁은 마치 영화나 게임 속 이야기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모세대의 생존방식과 지식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현세대의 아이들에게 "무조건 …해"와 같은 밀어붙이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잠시 통하는 듯 보여도 이후 더 큰 부작용이 일어난다. 그럼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될까? 그렇지도 않다. 이미 반항심 가득한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논리적 설명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속수무책이란 말인가? 그렇다. 당장 학교에 가게 할 비법을 찾는다면 아마 실패할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전반적인 상태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아이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무조건 학교는 가야 돼"라는 식으로 부모가 미리 결론을 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우리 OO가 아마 뭔가 많이 힘드니까 학교를 가고 싶지 않겠지. 이렇게 힘들도록 엄마(혹은 아빠)가 잘 몰랐네. 혼자 고민 많이 했을 텐데 미안해. 다만 엄마는 OO가 학교를 안 다니면 나중에 더 힘들까봐 그게 걱정되는 건데 도저히 못 다니겠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엄마는 우리 OO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해. 그러니 같이 얘기해보자"와 같이 아이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대화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배경에는 크게 학업 스트레스, 또래나 선생님과의 관계 스트레스,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 등이 있다. 당연히 이 모든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은 없다. 그러나 이런 스트레스를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울 수는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잘 느끼는' 아이가 되도록 키우는 것이다. 단순한 암기와 계산을 잘 하는 능력은 컴퓨터가 인간을 앞선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니 쓸모없어질 지식을 더 잘 습득하도록 경쟁을 독려하는 것은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자신과 타인과 환경을 보다 잘 느끼는 풍부한 감수성이 조만간 닥쳐올 학업, 관계, 자아정체성의 혼란기에 좋은 백신이 될 것이며 인공지능의 시대의 생존에도 유리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만들고 놀게 하자.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