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저평가된 범죄소설 이제는 재평가할 때

[책세상] 저평가된 범죄소설 이제는 재평가할 때
8개 질문으로 푸는 계정민의 '범죄소설의 계보학'
  • 입력 : 2018. 02.0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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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범죄가 사라질 수 없다면 모든 소설은 본질적으로 범죄소설이다. 하지만 범죄소설은 오래도록 저평가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범죄소설은 저속하고 부도덕한 상업소설로 규정되어 문학 위계의 가장 아래에 놓였다. 범죄라는 선정적인 요소를 끌어와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써 상업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통속 소설로 분류된 탓이다.

계정민의 '범죄소설의 계보학'은 삼류소설로 취급받아온 그 범죄소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뉴게이트소설, 추리소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등 대표적인 범죄소설이 어떻게 저평가되었는지 살피고 '탐정은 왜 귀족적인 백인남성인가' 등 8개의 질문을 던지며 재평가되는 과정을 들여다봤다.

뉴게이트 소설은 1830년과 1847년 사이에 영국에서 출판된 범죄소설로 범죄는 불공정한 사회체제로 발생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뉴게이트 소설의 퇴장 이후 나타난 추리소설은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하는 일이야 말로 사회의 질서와 합리성을 지키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1920년대 초반 등장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그와 달리 범죄는 계급과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거대악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고 여긴다.

범죄소설에 '문학적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추리소설이 단지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추리소설에서 사회는 합리성에 의해 작동되는 구조물이고 범죄는 이러한 합리적인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위협요소다. 이러한 장르적 공식을 반복하면서 추리소설은 당대의 지배구조를 옹호하고 강화한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 개인은 범죄의 근원에 가닿을 수 없는 극도로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범죄의 해결을 통한 사회적 통합과 화해의 가능성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재현된다.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팜므 파탈이다. 추리소설 속 팜므 파탈은 자본가계급과 매우 흡사한 존재로 나온다. 팜므 파탈의 욕망은 여권신장이나 성적 쾌락이 아닌 자본증식으로 향해간다.

저자는 "범죄소설은 계급, 민족, 인종, 젠더를 향한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이 경합하고 충돌하고 타협하는 문학의 요충지로 존재해왔다"며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롭게 변모하며 지금까지 소설 문학의 주요 장르로 남아있다"고 했다. 소나무.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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