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가시의 사회학' 정찬일 시인

[저자와 함께] '가시의 사회학' 정찬일 시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담아"
  • 입력 : 2018. 03.08(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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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써놓은 시편들을 묶어 두번째 시집을 낸 정찬일 시인. 지역으로 시적 관심을 옮기기 이전의 작품들이 담겼다.

20년만에 나온 두번째 시집
17년 전 30대 후반 쓴 시편
조만간 4·3시 묶은 시집도

당선 소식을 듣기 전에 그의 새 시집을 받았고, 당선 소식을 들은 후 그와 이야길 나눌 수 있었다. 얼마 전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된 제주의 정찬일 시인이다.

전북 익산 출생인 그는 다섯살 때부터 제주에 살았다. 제주생활이 50년이 되는 제주사람이지만 그가 지역의 사연을 시로 담아온 햇수는 오래지 않다. 실존, 소외 등 보편적 주제를 시로 녹여온 그는 40대에 들어 제주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지역에 살며 지역적인 걸 시로 쓰는 게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 등 4·3의 역사 현장을 틈날 때마다 찾으며 4·3시를 하나둘 빚어냈다.

이번에 그가 펴낸 '가시의 사회학'에는 그같은 변화 이전에 썼던 시인의 작품들이 실렸다. 17년 전 한데 모아놓은 시편들을 고스란히 묶어 냈다. 1999년 다층현대시인선 첫 권으로 선보인 '죽음은 가볍다' 이후 약 20년만에 발간한 두번째 시집이다.

'겨드랑이 밑에 통증이 온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거린다./ 어제는 발뒤꿈치가 따끔거리더니 오늘은 겨드랑이 밑이다./ 통증은 며칠째 몸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고 있다./ 손톱 밑에서 어깨로 명치끝으로/ 허벅지로 발뒤꿈치로.'

표제작의 일부다. '겨울, 내 몸엔 천개(天開)의 눈이 있다'부터 '반갑다, 지상에서 날개를 접은 저 새들의 길'까지 수록시 70편에는 '시인의 말'처럼 17년전의 그가 있다. 30대 후반의 시인이 붙들고 있던 한 세계가 보인다.

'가시의 사회학'에 삽입된 '가시'를 설명한 국어사전에 그를 들여다볼 수 있는 도움말이 있다. 가시는 '식물의 바늘처럼 뾰족이 돋아난 부분'이나 '물고기의 가는 뼈'를 의미하지만 지금은 '살에 박힌 나무 따위의 거스러미'나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것'으로 더 많이 쓰인다. 시대가 변하며 가시의 의미는 확장되었지만 가시가 품은 원시적 본능은 사라졌다. 시인은 가시를 통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시적 날카로움을 벼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십수 년 묵혀온 시를 꺼내놓은 시인은 잠시 제주를 떠난다. 건축을 전공한 인연으로 조만간 다른 지역에서 건축일을 할 계획인데 그에게 공간의 이동은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쌓는 여정과 같다. 2002년 소설 '꽃잎'으로 평사리문학대상을 받을 무렵에도 그랬다. 제주와 떨어져 있는 동안 비로소 그의 제주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 절반 가량을 4·3시로 채운 신작 시집이 빠르면 이 봄에 나온다. 다층.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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